그 동안 애니메이션 제작에, 소설 쓴다, 뭐 한다 하며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던 작가는 실로 20년 만에 신작 만화를 가지고 독자들 앞에 섰다. 오랫동안 격조했던 만큼 다시 원고지를 꺼내고, 스케치를 하고, 펜 터치를 한다는 것이 두렵고, 그림은 구태 스럽다. 오랜 시간 꾸준하지 못했던 실망감과 한심함을 책하며 그래도 한 컷 한 컷 공간을 메워 가다 보니, 어느 새 처마 밑 대청마루에 찾아온 감 빛 가을 햇볕은 작가의 노쇠한 등을 타고 손끝에 와 머물며, 작은, 아주 작은 희망으로 바뀌어감을 보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장수가 넘어 갈수록 (펜) 터치가 살아나고, 속도는 빨라졌다.
와콤(WACOM)시대에 무슨 똥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작가는 태블릿을 쓸 줄 모른다. 여전히 익숙한 건 연필이고, 펜이며, 물을 듬뿍 묻혀 색깔을 바를 수 있는 종이다. 세월과 함께 투박해진 손으로 그리는 만화는 ‘삐끕’이 제격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희비쌍곡선, ‘삐끕인생’. ‘삐끕라이프’, ‘삐끕만화’를 그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만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네 가지 모습을 그렸다. ‘어둠의 느와르’ ‘귀신되기 잘했다’ ‘장밋빛 인생’ ‘너 죽으면 어디로 갈거나’ 블랙홀처럼 빨려 드는 우리의 삶. 퍼즐조각처럼 잘 맞추어진 드라마 같은 인생, 누가 거부 할 수 있을까? 삶과 함께 죽음이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