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따뜻한’ 관점으로 예리하게 포착한 한 그루 나무 이야기EBS [지식채널e]의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역사·사회적으로 굵직한 이슈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온 정연숙 작가. 이번에 그 시선이 쏠린 곳은 바로 안동 용계리의 ‘용계 은행나무’입니다. 용계리의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인 이 700살 거대한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할배’라 불립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눈을 피해 조선 군사 100명을 숨겨 줬다는 이야기, 나라를 빼앗긴 날,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 슬피 울었다던 이야기가 마치 전설처럼 내려오는 나무입니다. 조선 시대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 장군이 임진왜란 후 고향 용계리로 와 은행나무를 돌보는 계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설화에 사실성을 더해 줍니다.하지만 1980년대 후반, 임하댐을 짓게 되면서 이 역사적인 나무도 마을과 함께 수몰될 위기에 처합니다. 700년이 넘은 거대한 나무를 들어 옮기기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당시 나무를 살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신문에까지 실리는 등 첨예한 입장들이 대립했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끈질긴 청원 끝에 4년여의 기간에 걸쳐 23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으로 나무를 옮기는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이렇게 많은 노력을 들인 사례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하지요. 당시 사정이야 매우 드라마틱하고 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작가는 덤덤한 듯, 세련된 어투로 은행나무 이야기를 복원해 내며 이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임을 넌지시 강조합니다.비 내리는 가을날, 작가는 용계 은행나무 앞에 서서 은행나무를 지켜 낸 사람들처럼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반문합니다. 그리고 40년 된 낡은 대단지 아파트가 철거되며 단지 안의 나무를 없애지 않고 경기도의 한 공원으로 옮겨 심은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고 뚜렷한 성과가 남는 물질도 기술도 중요하지만, 너와 나, 우리들의 시간과 삶이 담긴, 그래서 공동체의 역사가 된 시간을 소중하게 지켜 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일이 아닐까요? 『은행나무의 이사』를 통해 소중한 것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물질 만능의 시대에 내 주변의 이야기, 오랜 된 이야기를 잘 지키고 가꾸는 것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 내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임을 가슴 따뜻하게 느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