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월의 시는 신화적 상상력을 매개로 한 현실과 몽상의 판타지가 주조를 띤다. 「넝쿨」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유리창에 수상한 손이 보이는데, 주먹을 움켜진 손은 누구의 손일까라고 자문한다. 그것은 물론 넝쿨이라는 현실 이다. 넝쿨손을 목격하고는 문득 입이 바싹 마르고 머리카락이 선다. 집요하게 마지막 숨결마저 뽑아 올리며 화자에게로 오는 넝쿨손은 누구의 손인가. 번개가 번쩍이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화자를 부르며 오르는 넝쿨손 에서 화자는 한 얼굴을 떠올린다. 화자와 함께 너라고 호명되는 우리는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빛나는 너의 눈, 여름밤의 눈물을 머금고 있는 너는 시였음이 밝혀진다. 너와 나는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은유의 숲에서 허우적거리는 화자의 머리를 누가 내리쳤다는 것은 시라는 운명을 받아들 인다는 것이다. 번개가 번쩍이며 넝쿨손으로 찾아온 너는 바로 시이고, 시에서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만난다. 여기서 정수월 시인의 시인됨이 드러난다. 뿌리치려고 해도 유리창까지 담벼락을 타고 넝쿨손이라는 이름 으로 오는 시라는 아름다운 운명이다.
-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