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소설가의 첫 소설집 『공마당』은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설 어디에도 ‘여순사건’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생생하고 절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순천대학교 10·19여순연구소에서 5년째 유족들의 상처를 직접 채록·정리하는 일을 해왔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생존의 대가로 남겨진 수치심과 부끄러움, 트라우마를 작동시키는 공포의 징후들, 신경증적 우울, 생존에 대한 강박적 집착, 순결과 위생에 대한 강박증 등 정미경 소설의 인물들이 겪는 증상들은 망각과 시간에 저항하면서 하나의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여순사건’이다. 1948년 10월 여수와 순천을 포함 전남 동부에서 발생했던 군인들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자행되었던 ‘양민학살’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해당 사건 이후 남겨진 자 또는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들이다. 작가가 양민학살이라는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증언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차별받고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