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청소년 시리즈 36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과 푸른문학상을 수상하며 동화작가로 이름을 알린 김선정 작가가 소설 영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뜻밖의 행보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다져왔다. 어두운 곳에 잠깐이나마 손전등을 비추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에는, 자신의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외로운 존재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사건을 넘나들며 현실 위에 환상적 장면들을 포개 놓았다. 환상적 장면에는 어김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멧돼지가 있다. 보아 줄 이도 들어 줄 이도 없는 아이들 앞에 엎드려 가만히 귀 기울이는 멧돼지. 서글프지만 심장을 두드리는 가닥가닥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눈앞을 뿌옇게 가리기도 하면서 대단원을 향해 독자들을 끌고 간다.
새끼들을 모조리 잃고 마음마저도 잃어버린 채 마을과 산의 경계를 배회하는 멧돼지. 무분별한 개발로 산의 위용을 잃어가는 마리산처럼 자신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걸 느끼며, 산바는 새끼들을 죽인 자의 냄새를 좇는다. “누가 왜?”라는 답을 찾기 위해, 인간의 마을로 내려온 산바는 달려오는 전철의 굉음 속에서 또렷한 여자아이의 소리를 들었다. “도망가.”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마지막 등굣길에 오른 유림. 유림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전철역에 서 있다. 그런 유림의 눈에 가랑눈을 맞고 선 멧돼지가 들어온다. 마음을 잃은 이들의 이심전심일까. 산바는 유림의 목소리를 들었고 유림은 산바의 웃음을 보았다. 웃는 멧돼지라니. 멧돼지의 웃음을 본 이후 유령처럼 살아가던 유림에게 ‘삶’이라는 이름의 햇살이 깃든다. 어쩌면 그건 ‘겨울의 서원’이라는 북카페의 문을 연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