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리스트
  • 구매
생의 찬미 2
글쓴이
강헌 외 1명
출판사
고즈넉이엔티
출판일
2022년 3월 31일
  • 읽고있어요

  • 다 읽었어요

  • 읽고싶어요


저자

이미지

강헌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사대부고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들어갔지만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같은 대학의 음악대학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음악을 좋아한 탓이지만 거기서도 좋아하는 것과 밥벌이는 다르다는 것만 확인하고 대학원 졸업 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영화판으로 별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

‘장산곶매’라는 독립영화집단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을 만들었고, 상업 영화 시나리오 [아담이 눈뜰 때], [정글스토리], TV 드라마 [제3극장] 등을 썼지만, 이 일 역시 오래 하지 못했다. 후배의 부탁으로 김현식에 대한 평론을 썼다가 졸지에 음악 평론가가 되어 꽤 오랫동안 먹고살았고, 그 과정에서 『예감』, 『상상』, 『리뷰』 같은 문화계간지들을 또래 동료들과 만들기도 했으며, 홍익대와 성공회대 그리고 단국대와 성균관대 등에서 대중음악사를 20년 동안 가르쳤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며 [자유],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같은 콘서트와 [끝나지 않는 노래], [천변살롱], [천변 카바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음악극도 만들었지만, 그 어느 것도 이렇다 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명함에 박을 타이틀 하나 변변한 것이 없는, 빈 수레가 요란하기만 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한결같았던 것은 재수생 때부터 엄청 마셔댄 술과 음식 기행. 하지만 마흔세 살 되던 해 대동맥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서 생사를 헤맨 뒤로 술마저 그를 떠나게 되었다. 그 아쉬움으로 남산 자락에서 와지트라는 이름의 와인 클럽을 열어 지금은 세상을 떠난 유명아 셰프와 24절기 메뉴를 개발하기도 했고, 음식 팟캐스트 [걸신이라 불러다오]를 만들었으며, SBS 라디오 [황교익·강헌의 맛있는 라디오]도 진행했다. 그리고 벙커1에서 음악부터 와인, 축구, 명리학에 이르는 다양한 강좌를 열었으며, 그 결과로 생애 첫 번째 저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발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쓰러진 이후 11년간 그가 가장 몰두했던 것은 명리학이다. 모든 것을 잃고 황폐해진 상황에서 운명에 대해 처음으로 겸허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의 틀로 명리학을 독학했다. 그 결실은 벙커1의 [강헌의 좌파명리학]이라는 제목의 강좌로 이어졌고,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며 3년째 3기 과정에 들어서게 되면서 ‘哲공소’라는 이름의 작은 명리학 연구소도 열게 되었다. 그가 꿈꾸는 것은 보다 많은 이들이 온갖 허세와 오욕으로 더럽혀진 명리학의 본질을 소박하게 깨닫고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평등한 존엄함과 상생의 조화를 즐겁게 동무하는 것이다.

펴낸 책으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 『명리-운명을 읽다』가 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대중음악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사의 찬미’ 신드롬의 진실

드라마 작가와 음악평론가가 만나
5년여에 걸친 취재 끝에 발굴한 윤심덕의 삶!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진짜 ‘생’은 뜨겁고 감동적이었다!


1926년 8월 4일 새벽,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뒤이어 윤심덕의 음반 ‘사의 찬미’가 발매되고
전에 없던 광풍이 조선 일대를 휩쓰는데…….

지금껏 이 사건들은 음모와 소문에 둘러싸여
각각 비극적인 로맨스로, 한국 대중음악의 화려한 출발점으로 기록되어왔다.

하지만 모든 정황 증거는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

두 사람의 정사(情死) 소식은 정말 사실일까?
찬란한 생을 갈구하던 윤심덕이 죽음을 노래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사의 찬미’는 철저히 기획된, 거대한 음모의 신호탄은 아니었을까?

전체 리뷰 (0)
최근 작성 순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