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특이하게,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을 고쳐 쓴 책으로 원문의 제목은 "스트리밍 시대 새로운 음악 감상 방식의 출현과 그 의미 연구: 플레이리스트 이용 사례를 중심으로"이다. 저자는 [아무튼, 클래식]을 출간했으며, 김윤아 "나인 너에게", 투바투 "Your Light" 등을 작사하였다고 한다.

석사 학위 논문이 책으로 출간될 정도면 얼마나 대중성을 지니는 논문이었는지 궁금해져 선택하게 되었다. 논문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스트리밍 시대를 맞이하며 사람들이 플레이리스트를 이용하게 된 이유와 그 현상이 가지는 의미를 찾아가는 책이다. 그 방식으로는 1.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 댓글 문화의 반응 조사, 2. 애플 뮤직, 스포티파이, 멜론, 지니 뮤직 등의 여러 음원 플랫폼 이용자 개개인과의 인터뷰를 활용하였다.

즉, 이 책은 "음악 학문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감상자들'에 집중"하고 있다. 감상자가 음악을 접하는 경험의 순간, 그중에서도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상태나 상황을 규정짓는 하나의 가상 공간을 선택하는 행위, 즉 '수동성'을 구축하기 위한 '능동적 행위'"라고 표현한다.

감상자는 플레이리스트 속 각각의 곡을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하여 제공자 및 다른 감상자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감각 경험을 공유하며 유희하는 것이다. 이들은 리스트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마련한 "수동적 소리 세계에 '입장'하기 위해 능동성을 발휘하는 한편, 감상이 시작된 이후에는 능동적 지각을 시도한다."

이를 과거 유럽의 살롱 문화와 비교한 점이 인상 깊었다.

이용자들은 과거 유럽의 살롱 문화처럼 누군가의 공간에 초대되어 그의 선곡 및 편집 능력을 구경하고 평가한다. 그가 마련해 놓은 감각틀 안에서 음악을 즐기며, 익명성을 띤 채 그 자리를 채우는 불특정 다수와 별 의미 없는 잡담 혹은 내밀한 사연을 주고받기도 한다.

국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살펴보면, 섬네일 등 시각 이미지가 활용되고, 채널 운용자와 이용자 사이에 보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플랫폼 특성을 지닌다. 즉, 책에 서술된 예시를 보면 이와 같다. "예컨대 '뉴욕의 늦가을 한가운데서'라는 제목으로 여덟 곡의 팝 음악을 들려주는 한 영상물은 오래된 캠코더로 찍은 듯한 뉴욕의 거리 풍경과 거리의 소음을 편집해 넣어 특정 공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영상물의 댓글 창에는 "음악에 대한 정보, 선곡에 대한 감상평보다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 주를 이룬다."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음계나 조성 같은 음의 체계, 작품의 형식이나 구조 등 내적인 요소에 따라 장르를 구분하고 특징을 규정짓던 과거와 달리" 감상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음악을 구성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렇게 채널 안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는 같은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연대성을 보인다. 이들은 강제성이 없고, 익명성을 지니고 있기에 쉽게 모이고 흩어지면서도 서로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공감하는 것이다.

또한, 플레이리스트를 선정할 때,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선택하여 누리는 경우가 많다. '친절', '행복', '맑음'을 키워드로 해 선택하는 것이다. 이로써 "이들은 음악으로부터 발현하는 상상을 타인이 제공하는 정보로 신속하게 채우고 대체한다." 제공자와 감상자 모두 직관적이고 비규범적인 표현을 통해 다양한 상상을 자극한다. 나 역시 배경음악 삼아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내가 현재 원하는 느낌을 나타낼 수 있는 키워드로 검색하여 그 상상 속에 들어가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언급하였던 2번째 방식, 다양한 음악 플랫폼 이용자와의 인터뷰도 굉장히 흥미롭다. 플랫폼을 선택하는 요인이 매우 다양했는데,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구독료나 할인율", "장르의 특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대답을 통해 '타인이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를 감상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상태에 만족감을 누리기 위해 혹은 그러한 상황이나 상태가 되기 위함이라는 의도를 지닌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특정 음악가나 작품이 아닌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한다는 건 자신의 기호를 바탕으로 전과는 다른 경험을 누리겠다는 의도"를 지닌다. "경쟁에서 승리한 곡들만을 줄 세우기 식으로 소개하는, 차갑고 획일적인 음악 산업 안에서 감상자들은 레이스에서 벗어난 보석 같은 곡들을 찾아 나서고 싶었을 것이다. 권위와 질서가 아닌 감성적인 언어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느슨한 취향 공동체를 이루어 공감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음악을 음악으로만 즐겨왔지 학문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무지한 상태에서 책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관점으로 음악에 대해 접하는 경험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학술 논문이지만 이를 고쳐 책으로 출간한 것이기에 찐 논문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논문은 논문이라는 점. 내가 전공한 학문과 관련된 것도 읽기 힘든 것이 논문의 특성이니.. 존재론적 현상학, 수동적 종합, 파지-근원, 인상-예지, 야생적 지각 등 내가 모르는 개념이 너무 많았기에 일정 부분은 내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르고 계속 반복해 읽는 상황까지 발생.. 특히나, 마지막 "감상자의 몸: 감상자에 대한 현상학적 이해" 부분은 어려워서 별표까지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