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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열하일기 - 월드북 126
글쓴이
박지원 저
출판사
동서문화사
출판일
2013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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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박지원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책 소개

분야고전
연암 박지원은 조선 정조 때 학자로 청나라를 다녀와서 열하일기를 저술하였다. 그가 주장한 북학론과 실학의 실용성이 이 열하일기에 유려한 필체와 거침 없는 문장으로 나타나 있다. 열하일기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여행기라기 보다는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총망라한 백과사전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지식의 결정체이다. 이러한 광범위한 지식의 결과가 정약용이라는 위대한 지식인의 오로지 부국강병에 대한 간절한 애국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당시 사회에서 그 내용의 파격성에 찬반의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처음부터 정본이 없이 다양한 필사본들이 유포되었다. 문집이 처음 초록형태로 발간된 것은 연암 사후 100년이 넘은 1900년대 초반 김만식 등에 의해서였다. 연암의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을 지냈음에도 할아버지의 문집을 간행하지 못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열하일기의 개혁성과 진보성을 짐작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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