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와 그의 주인, 목적지도, 이유도 알 수 없는 여행길에 오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희곡은 ‘3막짜리’이지만 막간 없이 공연되어야 한다. 막 사이에는 잠깐 암전을 하거나 커튼을 내려 구분한다.
전체 공연 동안 무대는 바뀌지 않는다. 조금 낮은 앞쪽 무대, 조금 높아서 연단 같은 뒤쪽 무대. 현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무대 앞쪽에서 연기되고, 과거 일들은 연단 위에서 일어난다. 무대는 거의 계속 비워져 있다가, 몇몇 일화를 위해서만 배우들이 직접 의자나 탁자 따위를 들고 등장한다. 장식도 없고, 상징도 없이 무대는 그저 단순하다.
디드로의 소설처럼 극은 18세기에 일어나지만,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모습의 18세기여야 하고, 언어도 옛날 단어로 복원하지 말아야 하고, 배경과 의상에서도 역사적 특성이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자크와 그의 주인은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오로지 “저 높은 곳에 씌어 있”을 뿐이다. 무료한 여행길을 달래기 위해 자크는 자신의 첫사랑, 동정을 잃은 얘기를 하기 시작하고, 잠깐 머무른 여인숙에서는 여인숙 여주인이 포므레 부인의 처절한 사랑-복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주인 또한 자신이 친구에게 어떻게 속았으며, 어떤 사랑을 했는지 말하기 시작하고, 여행길은 목적지도, 이유도 알 수 없이 이어진다.
쿤데라는 디드로의 원작 소설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의 큰 줄거리를 가져오되 무대와 연기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20세기와 18세기(그들 정신의 세기)의 대면이 작품 전체를 은밀히 관통해야 한다. 그것을 이해 가능하고 균형 잡히도록 만들려면 매우 충실하게 텍스트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