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다 무려 11년을 감옥에서 보낸 혁명가 박석률. 일제강점기에도 항일운동으로 11년의 감옥생활을 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현상(13년), 김형선(12년), 이재유(12년)…. 그럼에도 우리는 박석률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박석률과 그의 벗들을 기리는 책 『그 시절, 광주 사람들-혁명가 박석률과 그의 벗들』(심미안 刊)이 박석률 타계 5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됐다. ‘박석률 기념사업회 준비위’가 기획하고 황광우 작가가 엮었다.
이 책에는 혁명가 박석률과 그의 젊은 벗들인 임동규, 김남주, 이강, 이학영, 박석삼이 소개돼 있다. 지난 2020년 9월에 타계한 임동규는 4·19학생혁명운동에서 시작하여 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체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 사건과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두 번의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흔히 ‘쌍무기’로 불리기도 했다. 박석률은 임동규의 권유로 1977년 10월, 남민전에 가입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과, 남민전, 다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건으로 도합 11년의 삶을 감옥에서 보냈다. 김남주 시인은 지하신문 [함성]의 장본인이다. 19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되고 아무도 저항하지 못할 때, 김남주는 친구 이강?후배 김정길과 함께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쓰고 뿌렸다. 이후 1978년 9월에 박석률을 만나 남민전에 가입한다. 여기에 실린 김남주 약전은 옥중 편지에 의거했다.
이강은 앞서 말했듯이 김남주와 함께 [함성]을 제작했다. 1978년 4월 북동성당에서 함평 농민들의 고구마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농성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이 책에는 2011년 ‘합수 윤한봉기념사업회’에서 세 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박석률이 “정말 솔직하고 꾸밈이 없지. 학영이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라고 평가한 이학영(현 국회의원)은 타고난 시인이었다. 그는 박석률의 권유로 남민전에 가입했으며 김남주와 함께 그 혹독한 세월을 견뎌냈다. 이 책에 실린 인터뷰는 2011년 ‘합수 윤한봉기념사업회’가 1970년대 광주 청년들의 삶을 수집한 내용이다. 그의 구술을 읽노라면 그가 얼마나 여리디여린 문학청년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인물은 박석삼이다. 박석삼은 자신의 친형인 박석률을 따라 남민전에 가입했으나, 형보다 더욱 맹렬한 전사가 되었다. 남민전의 투쟁에는 늘 박석삼이 함께했고, 함평 고구마 투쟁을 지휘하던 이강과 윤한봉을 돕는 일은 물론, 박기순과 함께 교육지표 시위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싸움의 선봉이었던 그는 1980년 법정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9년의 형기를 채우고 1988년 12월에 출소했다. 이 책의 제7장에는 ‘박석률, 박석삼 형제들의 옥중 편지’가 수록되어 있고, 제8장에는 ‘박석률의 유작 및 약력, 활동, 저서’ 등이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