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이 터지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하게 여겨 보았을 질문이다. 이 책은 핵전쟁 때문에 죽는 늙은 부부의 삶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핵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을 꼬집는 작품이다. 글씨도 많고 그림도 작아 고학년 아이들에게 적당한 책이지만 핵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잔인하게 파괴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림은 우리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를 그린 레이먼드 브릭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정년 퇴직을 하고 시골에서 사는 노부부이다. 두 사람은 도시에서 떨어져 살면서도, 부지런히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고, 도서관에서 정보를 얻으며 적극적으로 살아간다. 불리한 상황에 놓여도 밝은 면만 보려 하고, 삶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핵폭탄이 터진 뒤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핵폭발 뒤에 생긴 방사능에 오염되어 차츰 기력을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못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 노부부는 사회를 위해서 젊음을 바치고, 이제 남은 여생을 전원에서 평화롭게 보내려다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한발 한발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노부부의 희생”을 통해서 현대 문명이 가져오는 폐해를 전달한다. 힘 있는 젊은이가 아니라 힘 없는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도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힘 없는 대중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대중의 의식 속에 박혀 있는 백인 우월주의와 정부에 대한 맹목적 신뢰도 은근히 비꼰다. 『바람이 불 때에』는 단순히 핵의 위험성을 고발하려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긍정적으로 대처하고, 어떠한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당부가 실려 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를 하는 노부부처럼.
『바람이 불 때에』가 영국에서 처음 나왔을 무렵에는 그런 위기감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이 책을 통해서 핵폭탄의 위험성을 일깨우길 원했다. 그러니 이 책은 어린이가 읽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핵폭탄이니 전쟁이니 하는 삭막한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것도 어른들이고, 그 위험성을 깨닫고 변해야 할 것도 바로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구성을 하고 있어서 한 페이지 안에 작은 칸들이 나누어져 있고, 각 칸마다에 각기 다른 내용의 그림들이 들어 있는 것이 만화책 같은 느낌을 준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그림책에 만화 기법을 도입해서,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독자들은 등장 인물과 함께 호흡하고, 대화를 나누고, 위기 상황이 오면 함께 숨을 죽인다. 또 내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