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는 담을 쌓았고 소통은 불가능하며, 어떤 논쟁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오직 상대편의 관점이나 생활 방식이 뿌리 뽑힐 때라야 비로소 안도하는” “폭력적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광신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제아무리 말을 걸고 설득하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고, 바꿀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는 것마저 용납하지 않는 고집불통들, 시대착오자들, 미친 신념의 무리들……. 그런 이들을 설명하는 말은 바로 ‘광신’이라는 한 단어면 족하다. 이런 점에서 광신 개념은 역설적으로 역사가 없다. 그것은 그저 비난의 대상이자, 비역사적인 병리 현상일 뿐이다.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근본적 저항을 반대하는 운동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광신이 또다시 모욕적 용어나 정치적 비방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현재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은 광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칸트,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프로이트, 블로흐, 바디우를 관통하는 비판적ㆍ변증법적 계보를 재조명하고, 광신 개념이 겪은 어두운 모험들을 읽어 나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체주의 대 자유주의, 회의 대 신념, 합리 대 광신 등으로 모든 논의를 단순화함으로써, 모든 대안과 가능성을 봉쇄해 온, 정치 종교 담론과 세속화 담론의 이면을 파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