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소유》《암자로 가는 길》의 작가 정찬주의 시정詩情이 넘치는 여행
구도적 문체와 시적 감수성이 빛나는 명상의 절 순례기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저마다 깊은 역사와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곳, 세속의 잡념을 털어내고 고요한 명상에 잠길 수 있으며 차 한 잔을 건네는 푸근한 마음이 있는 곳. 작은 절을 찾아가는 길은 우리 내면에 자리한 ‘참된 나’를 만나는 구도의 여정이다.
세속의 잡사는 잊어버리고 고요함과 하나 되라
이 책은 30여 년 동안 특유의 구도적 문체로 불교적 사유가 담긴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 정찬주가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의 작은 절들과 인연 따라 조우한 순례의 기행문이다. 저잣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남도 산중에 이불재耳佛齋라는 집을 지어 들어앉은 그는, 그동안 이 땅의 암자와 선방을 순례하며 삶의 지혜를 깨닫는 글로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깊고 고요한 곳에 자리한 작은 절을 찾아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08 동인의 숨결이 스민 도량 지리산 벽송사를 거닐고, 선방산 지보사 배롱나무 꽃무더기 속에서 석탑을 보며 지극한 마음을 키운다. 꽃피듯 자연스러운 무위無爲를 월출산 무위사에서 느끼고, 고승들의 절창이 남아 있는 비슬산 유가사에서는 풍류란 바람으로 마음을 읽는 것임을 알게 된다.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와 같은 이름의 절, 종남산 송광사에서는 절의 위의는 도량의 크기가 아니라 주름살이 진 건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호랑이 앞발 자리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월출산 도갑사에서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며, 나무와 풀, 새와 짐승, 바람과 물 등 자연의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는 부처님을 느낀다. 천년고찰 운주사, 쌍봉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후산 유마사의 오랜 역사 앞에서 인연의 깊이를 다시 헤아리게 된다.
작은 절을 찾아가는 길은 우리 내면에 자리한 미소 짓는 부처, 즉 ‘참된 나’를 만나는 구도의 여정이기도 하다. 청량산 문수사에서는 마치 극락으로 가는 배를 탄 듯, 녹음의 바다에서 무심과 적멸의 경계를 넘나들고, 천등산 봉정사에서는 행복과 무상함이 본래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묵은 절의 주름진 기둥, 칠이 벗겨진 단청, 고승의 절창이 남아 있는 산 속 작은 절에서 우리는 홀연히 깨닫는다. 불상이란 우상이 아니라 순간적이나마 욕망과 분노,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씻고 홀연히 만나 미소 짓는 우리 내면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라는 교만을 버리게 하고, 절하게 하는 곳이 바로 작은 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옮기며 깨닫는다. 그곳은 저잣거리나 산속의 깊은 암자, 작은 절에 있는 것이 아니며, 바로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 안의 나와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