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 시라고 했다. 여기에서 치유는 2차적인 문제이다. 치유는 승화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치유나 승화란 없다. 따라서 시집 『그림자 골목』 전편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상처다. 그 상처는 때론 ‘슬픔’으로, 때론 ‘그리움’, 혹은 ‘울음’이나 ‘고독’으로 나타난다.(중략) 정병호 시인의 시적 출발점은 상처다. 그의 상처는 내면의 어둠에서 온다. “가만히 자기를 들여다보면”(「배롱나무 풍경」) 보이는 풍경들, ‘숨겨진 그림자’나 ‘방치된 그리움’, 혹은 ‘슬픔으로 충혈된 구멍’들이 보인다. 주체의 내면에서 보이는 이러한 어둠 속 그림자는 생에 모순을 불러들인다. “진달래는 쓸쓸해서 피”(「진달래를 보다」)고, 첫눈은 “슬프도록 그리”(「손톱」)우며, “삼복더위에도 식은땀을 흘리며”(「점심으로 설렁탕을 먹었다」), “길 없는 길”(「낙타처럼 걷는다」)을 간다. 이러한 모순어법은 내면의 상처로 인한 정상적인 인식의 불가능함에서 온다. 이에 시인은 그 치유하기 힘든 상처의 근원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장면들이 자신의 과거, 에피소드다. 그 사실의 사건은 주로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아내나 지인들의 삶이다. 이들을 통해서 그의 상처는 객관화되고 사회적 상상력으로 고양된다. 그와 함께 꽃이라는 모티프를 찾아내 그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그 상처의 치유 과정이 시를 낳는다. 병적일 정도로 상처에 몰입되어 있던 주체는 객관화되고, 그 객관화는 어둠의 ‘틈’을 건널 수 있는 불을 밝히는 꽃을 만나면서 시로 피어나 스스로를 치유한다. - 전기철(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