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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고양이
글쓴이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저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13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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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프랑스의 작가, 마임배우, 무용수, 저널리스트.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독보적인 프랑스 작가. 프랑스 역사상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최초의 여성. 20대인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클로딘 연작 4편을 썼고(거의 감금된 상황에서) 남편의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1년에 1편씩 썼으니 엄청난 생산성에 가혹한 노동 착취라 할 만하다. 이 클로딘 연작은 당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세기 최초의 사춘기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 내밀한 감정, 사적 관계를 탐구하는 유연하고 서술적인 산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적 경향, 내면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일상생활의 세부 사항을 조사하려는 당시의 문학적 경향에 딱 들어맞았다.

콜레트는 일곱 살에 발자크를 비롯해 코르네이유 등 프랑스의 고전을 탐독한다. 전직 군인이자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세금 징수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와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 부모의 따듯한 사랑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특히 집 안뜰의 정원에서 관찰 기술을 터득한다. 부르고뉴의 숲과 정원, 그 향수는 평생 콜레트 글쓰기의 근원에 자리 잡았다. 남편 윌리(Willy)는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음악 평론가이자 작가, 그리고 출판 업자였다. 그는 젊은 아내를 파리의 문학계와 음악계에 소개했는데, 그곳에서 가브리엘은 부르고뉴의 거친 악센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젊은 아내의 글쓰기 능력에 놀란 Willy는 그녀를 쉐도우 대필작가로 이용한다. 클로딘 시리즈는 당시 문화현상이 될 정도였다. 클로딘의 단발머리가 도처에서 튀어나와 파리를 휘젓고 다녔다. 1906년 자신의 글에 관한 그 어떤 권리도 얻지 못한 채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후 콜레트는 뮤직홀에서 당대 최초의 여성 마임 배우가 된다. 그녀의 의상, 그리고 동료 여배우와의 키스 등으로 쇼는 경찰로부터 공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06년 윌리와 헤어진 후에 쓰기 시작한 글들이 바로 출간을 앞둔 「les vrilles de la vigne 포도덩굴손」이다.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어린 시절의 정원과 숲의 기억, 그리고 당시의 파트너인 마틸드 드 모니(미시)와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이 시기 콜레트는 작가로서의 직업적인 성취도 이루기 시작한다.

1912년 콜레트는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Henry de Jouvenel을 만나 결혼한다. 외동딸 Colette Renee de Jouvenel을 두었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40세의 나이에도 당시 16세였던 남편의 아들 베르트랑 드 주브넬 (Bertrand de Jouvenel)과 5년 동안 연인관계로 지낸다. 이때의 이야기가 1920년 소설 '셰리'로 출간된다. 소설은 베르트랑 드 주브넬과 관계를 맺기 몇 년 전인 1912년에 구상했다고 해서 환상이 현실이 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두 번째 남편과는 1923년에 이혼) 1910년대 후반엔 신문의 평론 기고와 연극 각색에도 참여하고 Maurice Ravel과 음악 작업도 함께하면서 배우, 작가, 가수이자 작곡가로 벨 에포크의 유명 인사가 된다.

1929년엔 대공황 속에서 생계를 위해서 파리의 rue de Miromesnil 에 '미용 연구소' 일종의 뷰티샵을 열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고 여성들의 피부관리를 직접 해주기도 했다. 물론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년 만에 문을 닫는다. 그 해 콜레트는 자신보다 16살 적은 나이의 세 번째 남편인 Maurice Goudeket을 만나 결혼한다. 전쟁 중에는 남편 모리스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자 비시 정부의 유력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의 인물들을 동원해서 남편을 수용소에서 구출해낸다.

고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그녀는 주로 침대에서 수많은 신문에 글을 쓰고 소설을 출판한다. 그녀의 비정치적 성향과 재정적 필요로 인해 독일 점령기의 협력주의 신문, 페탱주의 신문에도 글을 썼고 지하 언론의 저항 세력으로부터는 거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 점령을 옹호하거나 찬양하는 글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점령기의 일상, 전시의 여성들의 삶의 고단한 풍경을 써나갔을 뿐이다.

1945년엔 만장일치로 공쿠르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49년에는 공쿠르 아카데미의 회장이 된다. 명성을 얻으려면 자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빨리 이해한 그녀는 20세기에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힌 작가로 남는다. 1954년 8월 3일 사망 후 가톨릭교회의 장례식은 거부당했지만, 프랑스는 여성 사상 최초로 국가 장례로 콜레트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페르라세즈 묘지에 안장했다.

책 소개

분야소설/시/희곡
프랑스 대표 여성작가 꼴레뜨 『암고양이』 국내 초역
존재에 대한 순수한 본능, 질투와 관능의 감각적 풍경


작가 꼴레뜨의 일생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결실이 쏟아진 시기, 즉 창조적 영감이 가장 빛나던 시기에 발표된 소설 『암고양이』가 국내 초역됐다.
인습을 거부하는 새로운 여성적 시선으로 사랑과 욕망, 질투와 같은, 생에 대한 순수한 본능을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 속에 탁월하게 그려내는 꼴레뜨는 ‘여성적 글쓰기’를 통해 여성의 자유와 삶의 자율을 예리하게 짚어내어 욕망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표현함으로써 ‘당대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가’ ‘우리의 꼴레뜨’라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다.

『암고양이』에는 정적이고 수동적이며 여성적이고 섬세한 알랭이 표상하는 유년의 꿈의 비현실세계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남성적이고 당당한 까미유가 표상하는 굳건한 현재와 계획된 미래의 현실세계가 대립하고 있다. 상호 소통 불가능한 세계에 각각 속한 알랭과 까미유가 서로를 이해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화해 불가능한 세계에 각자 고립된 욕망이 찾아낸 출구는 질투다.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는, 질투로 가득한 긴장된 세계, 이것이 바로 꼴레뜨가 인식하는 『암고양이』의 세계다.

『암고양이』에서 사랑, 질투, 욕망 등 다양한 감정들은 색깔, 맛, 향기, 소리, 촉감 등의 감각으로 구현된다. 이 감각의 세계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포착된 자연과 감각을 느끼는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꼴레뜨의 감각적 글쓰기는 관념어에 대한 저항 혹은 여성적 주체성의 고양이라는 함의를 담아 ‘여성적 글쓰기’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꼴레뜨는 가부장적 관념이나 윤리로 규정 혹은 제재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발적·자율적 여성을 표현했다. 욕망의 주체로서, 즉 자기 욕망의 주인으로서, 감정, 관능, 쾌락에서 금기를 넘어선 여성을 그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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