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를 모르는 것이나 설령 안다고 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역사를 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삶이라면 망각은 죽음이다. 그만큼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삶을 죽음으로 내몰리게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가깝다. 일찍이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 H. 카)는『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정의를 내렸다. 역사가 대화라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어느 한쪽만의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그보다는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부적절한 대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으로 나라 안팎이 혼란한 상황에서 ‘민음 한국사’ 시리즈가 출간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역사 공부가 단편적인 사실에 근거하다 보니 우리는 제대로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국사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보다는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이게 하였다.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이 정도라고 하면 세계사에 이해는 한층 망각하기 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배경으로 하여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한국사의 흐름을 다양한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시각에서 파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누구나 믿고 읽을 수 있는 정통 한국사라는 것을 분명하게 부각시킨다.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은 민음 한국사 시리즈 제 1권이다.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다음과 같은 취지를 알게 된다. 즉,

통사를 다루면서 주제에 따른 시대구분을 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100년의 시간대를 적용한 것은 기존의 역사 인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는 의미가 있다. 왕조사관, 민족사관, 민중사관 등 일세를 풍미한 역사관에 따른 시대구분은 과거와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사관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민음 한국사’는 바로 그런 시기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는 세기 단위로 역사를 재배열하고 그동안 우리가 놓친 것은 없을까, 잘못 본 것은 없을까 들여다보고 동시대의 세계사와 비교도 하면서 한국사의 흐름을 새롭게 파악해 보자는 제안이다.

그렇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읽는 것은 진부하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어떻게 하면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다양한 시각이 없다면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일례로 우리는 조선 4대 사화(士禍)를 훈구파와 사림파의 권력 투쟁으로 여겨왔다. 훈구파가 현실적이고 보수적이라면 사림파는 이상적이고 진보적이었다. 하지만『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는 관서의 고유 임무로 본다면 훈구파와 사림파는 정치 세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훈구는 의정부와 육조의 대신으로 정책을 심의하고 집행을 담당했다. 반면에 사림은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무관)이며 그들의 임무는 간쟁과 탄핵이었다. 이러한 자명한 사실을 외면하면서 오직 훈구파와 사림파의 당쟁이라고 역설하는 것은 소통을 단절시키는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식의 편향적인 사고는 전염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민음 한국사는 한국사를 총체적으로 보게 한다. 동시에 세계사와도 비교할 수 있어 좀 더 시야를 넓게 하고 있다. 100년 단위의 한국사라는 새로운 역사 서술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비주얼 요소들이 역사를 보는 시야를 밝게 한다. 민음 한국사 시리즈, 총 16권이 기대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삶의 총체적 진실이다. 그럼에도 굳이 역사를 망각하거나 망언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역사는 누구를 위한 변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가치와 존엄성을 드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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