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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긴 시대의 속내
글쓴이
김윤규 저
출판사
도서출판나루
출판일
202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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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김윤규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일 낮에는 한동대학교 교수로, 고집쟁이 대학생들과 팔씨름을 하면서 돈 되는 짓 27년째, 밤에는 청소년자유학교 교장으로, 학교밖 아이들과 참호격투를 하면서 돈 안되는 짓 21년째, 주말에는 그나마 곡강교회 장로인데, 게으르다. 책도 좀 내고 번역도 좀 했는데 별로 유명하지 않다.

한국문화융합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주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한국문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는 『개화기 단형서사문학의 이해』 외 몇 종이 있으며, 논문은 「최서해 문학 연구」 외 수십 건이 있다. 『석주유고』, 『백하일기』, 『서산선생문집』, 『동구유고』 등의 번역에 참여하였고, 『다산 장기 유배문학 산책』 등 몇 권의 편역서를 지었다.

책 소개

분야역사
돌에 무엇을 새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쇠는 녹이라도 슬고 나무나 종이는 썩기라도 하지만, 돌은 지구소멸까지 불변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비석 하나라도 세우기를 조심했다. 글자 하나도, 작은 사실도, 허위나 과장이 없도록 조심하고 조심했다. 그래서 오래된 비석들은 세월의 이끼와 함께 무거운 의미를 담고 서 있다.

그러다가 요즘 갑자기 그런 조심성이 풀렸다. 신분 제약이 없어지고, 염치가 없어지자 눈치 보기도 사라졌는데, 주머니에 돈도 좀 넉넉해지자, 사람들은 돌에 글자를 새겨 세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착하게 살자” 비슷한 비석은 고을마다 섰고, “봉사한다”라고 큼직하게 새긴 돌도 곳곳에 서 있다. 모든 돌은 반드시 세운 자의 이름도 새겼고, 심지어 조상을 추모하는 비석에조차 돈 낸 후손의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동부마을, 서부공장, 남부학교, 북부회사, 중부협회’ 등의 안내판도 모두 돌에 글자를 새겨 세웠고, 신이 나면 돼지를 기르는 농장 이름도 돌에 새기고, 이름 없는 조상을 고위 관직에 임명하고 돌에 새겨 세웠다.

너무 많다. 이러다가는 영세불멸의 쓰레기들이 국토를 덮을 수도 있다. 아마 결국은 뜻깊은 비석과 단단한 쓰레기가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비석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읽지 않는 비석은 그저 돌덩이, 통행지장물일 뿐이다. 내용을 읽고 그 의미를 아는 이에게만 비석은 속내를 드러내고, 쓰레기에서 걸어나와 문화재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석을 읽지도 않고 그냥 돌덩이라고만 한다.

우리가 비석을 읽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한자漢字이다. 한자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의 공용문자였는데, 최근에 사용이 줄어들면서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래서 한자는 그냥 어려운 글자라는 느낌만 남았다. 그러나 한자 자체는 어쨌든 편리한 문자의 하나이다. 그리고 당연히, 한자로 쓰인 글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모든 시민이 한문으로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좀 더 쉽게 비석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가공해서 제공하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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