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말합니다.
그때 존재 깊숙한 곳에서 느꼈던 그대로
그의 영향은 나의 전 생애에 내린 축복이었다고.
_ 브루노 발터, [들어가는 글(1958년판)] 중에서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는 아닙니다. 전기를 읽고 싶다면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나 말러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의 음악과 삶이 추구했던 의미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발터의 온화한 육성으로 기록된 이 책이 ‘거의’ 최고의 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
_ [옮긴이의 말]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인 1889년 11월,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이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을 때 공연장은 경멸과 분노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혁신적이지만 낯선 그의 음악어법은 비평가들에게 “교향곡의 규칙과 질서를 파괴한, 통속적이고 끔찍하게 과장이 심한 작품”이라는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말러를 지지하던 빌럼 멩엘베르흐,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퍼러,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존 바비롤리 등 선구자들이 그의 작품을 알리려 애썼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말러의 곡들은 연주회 레퍼토리에 포함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오늘날 말러는 서양 고전음악의 전당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름난 지휘자 가운데 말러의 작품을 녹음하지 않은 이가 드물고, 부천시향과 서울시향은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고, 우리에게 친숙한 지휘자 정명훈도 “말러를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가 되었다”고 밝힐 정도로 말러 교향곡의 영향력과 대중의 사랑은 커졌다. 말러가 “앞으로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듯, 그의 시대가 왔다.
1894년 바이마르에서 1번 교향곡을 처음 들은 열여덟 살의 브루노 발터는 말러에 대해 알고 싶어서 “애가 달았다”. 같은 해 함부르크에서 말러를 첫 대면한 발터는 말러에게 발탁되어 함부르크 시립가극장에 채용되었고, 빈 궁정 오페라에서도 6년간 함께 일하며 평생 제자이자 친구이자 동지로 우정을 쌓았다. 발터는 말러의 수많은 작품을 초연 및 지휘했으며, 말러 서거 후 〈대지의 노래〉와 9번 교향곡도 초연했다.
말러의 부지휘자로 함께 일했고 그의 전성기 때 6년을 거의 매일같이 만났던 동료, 브루노 발터가 전하는 말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구스타프 말러』는 발터가 말러 서거 25주기(1936년)를 기념하여 그의 음악과 삶을 기록한 책으로,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58년에 쓴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20세기 두 거장의 깊은 이해와 우정의 결실인 이 책은 말러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