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집필장소를 빠짐없이 쫓아가 찍고 기록한 독특한 전기”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만큼 철학사적 가치와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로 오늘날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내밀한 독서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철학자도 흔치 않을 것이다. 사유와 상상력의 깊이, 문체의 변화무쌍함에서 니체는 글쓰는 이들에게 안락한 도피처와 우상이 되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적 니체를 일궈낸 그의 삶, 무엇보다 니체의 그 문제 많은 육신적 삶은 결코 모방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심지어 그 치열함 때문에 동정의 대상도 되기 힘들다. 질병이 니체 생의 마지막 10년을 덮쳐 광인적 착란 속에서 삶을 마치게 했다는 것쯤이야 니체의 독자라면, 아니 니체의 독자가 아니더라도 혹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인 니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길었으며, 고통의 정도와 폭도 안타깝지만 너무도 깊고 넓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기질은 젊은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으며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합병증이 나중엔 숨 쉬는 것조차 힘들만큼 니체의 영혼을 쥐어짰다.
이러한 니체의 삶이 있었기에 이번에 번역 출간된 『좋은 유럽인 니체Nietzsche The Good European』라는 독특한 관점의 전기가 시도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니체 전공 교수 데이비드 패럴 크렐과 도널드 L. 베이츠라는 미국의 사진작가가 의기투합하여 유럽 곳곳에 흩어진 니체의 집필 장소를 답사하며 그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다시 글로 뽑아내는 방식으로 쓰인 이 책은 어찌 보면 ‘흔적의 고고학’이라 할 수 있으며 답사 형식의 글쓰기에서만 가능한 ‘숨결의 복원’을 감동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베이츠가 직접 찍고 니체자료보관소에서 골라내 수록한 수백 컷의 사진은 방랑자 니체와 그의 그림자를 보듬어 품고 유려하게 펼쳐져 있다. 니체가 태어나고, 자라고, 거닐면서 바라보던 산길과 호수, 숲, 바닷가, 도시의 보도들은 ‘좋은 유럽인 니체’를 만들어준 바로 그 ‘개개의 유럽들’이기도 하다.
아픈 몸과 특유의 정신적 민감함으로 장소에 매우 신경썼던 니체는 “환경, 기후, 지형이 한 사람의 삶과 사상에 명백하고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했다. 그러한 니체가 옮겨다닌 곳의 풍광과 그곳에 대한 니체 자신의 열렬한 묘사를 병치시켜 읽는 것, 니체 자신조차 “글로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한 그 풍경들의 아름다움과 평온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책들이 쓰여지는 동안 말없이 니체의 머리칼에 가닿았던 바람과 숙이며 걷는 등허리를 내려다보았던 나무와 숲을 니체가 된 기분으로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어느덧 “좋은 유럽인 니체”의 내면풍경을 공유하는 심정이 된다.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사흘 밤낮을 토해야” 했고, 친구들과의 대화는 물론 음악조차 들을 수 없었던 니체의 처절한 고통의 편지들이 총천연색으로 대비되는 느낌이야말로 이 책이 우리의 감성을 가장 심하게 쥐어뜯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좋은 유럽인”으로서의 니체의 자각과 그런 일관된 지향 속에서 유럽의 곳곳을 거닐며 유럽이 니체의 사상에 미친 영향, 니체가 유럽을 마시고 삼킨 구체적인 정황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