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된 운명의 성』의 배경은 수많은 환상적이고 모험적인 이야기들이 펼치지는 중세 유럽의 세계이다. 숲 속에 자리한 성과 선술집에 어둠이 내려앉자, 다양하고 개성 있는 여행자들이 밤을 보내기 위해 모여든다. 그런데 마치 마법에 걸린 듯이 그들은 모두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다른 것은 모두 그대로인데, 단지 벙어리가 된 것처럼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 위해 우연히 만난 사람들은 한 벌의 타로 카드를 활용하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각 등장인물은 78장의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진 타로 카드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 한 장씩 순차적으로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손님들에게 이해시킨다. 타로 카드 그림은 등장인물의 신분을 밝히고 그들이 겪은 모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기호로 기능하는데, 그림의 해석은 각양각색이 될 수 있으며, 독자는 여행자 중 하나인 화자가 해석하는 시선에서 따라가게 된다. 소설 속에서 각각의 타로 카드들은 본문 옆에 제시되며,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독자 역시 타로 카드 이미지를 먼저 숙지해야 한다. 『교차된 운명의 성』은 이렇듯 타로 카드 그림이 중요한 텍스트 기호로 작용하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사용되는 타로 카드는 다양한 버전 중 가장 오래되고 클래식하다고 평가받는 비스콘티 카드와, 좀 더 대중적인 버전의 마르세유 카드다. 소설은 카드에 따라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차된 운명의 성」은 비스콘티 카드로, 「교차된 운명의 선술집」은 마르세유 카드로 진행된다. 그러나 칼비노는 타로 카드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 같은 유명한 문호의 작품이나 명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도 뒷부분에 포함시켜, 더욱 풍부한 상징을 더했다. 이렇듯 비텍스트적인 이미지를 조합하고 재배열하며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문학적 시도를 통해 칼비노는 언어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인간의 근원적 서사 구조에 깊숙이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