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길을 잃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인간의 편이 아닌 소설의 편에 선 소설가”(금정연)로 평가받으며 그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소설을 선보여왔던 양선형의 첫 중편소설이 나왔다. 이번 소설은 서해 접경지의 실제 공간으로도 유추가 가능한 V섬에 이뤄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양선형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모를 파악하기 불가능한 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환상적으로 고립되는 경험을 통해, 독자는 소설 읽기의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구성되는 것은 현실인가, 이야기인가. 과연 우리는 이 차이를 분명하게 인지한 채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구성된(영상과 증언을 포함한 모든 텍스트) 것이 현실을 초과한 현실이라는 인식은 평범할 수 있지만, 구성하는 자가 스스로 자신이 구성한 현실 속에서 길을 잃은 채, 그것을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의 반복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현실이라면, 미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때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설’ 그 자체뿐일지도 모른다.
“작가로서 언제나 내가 소설을 통해 갈망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이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나는 비유나 수사로서가 아니라 진실로 그런 움직임이 글을 쓰는 나의 처소에서 현행적으로 계속되길 원하며, 길을 잃어버리면서도 길을 잃어버릴 수 있는 고유의 힘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_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