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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이성론
글쓴이
조반니 보테로 저
출판사
아카넷
출판일
2023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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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조반니 보테로

1544~1617. 종교개혁기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이자 외교관이자 성직자로, 피에몬테주의 베네 바지엔나에서 태어나 로마대학과 파도바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후 밀라노예수회학교에서 성서를 강의하다 예수회에서 출교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보테로의 재능을 높이 산 밀라노 대주교 카를로 보로메오의 비서로 발탁되어 2년간 그를 보좌하게 되면서 신경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대주교가 죽은 뒤에는 그의 어린 사촌인 페데리코 보로메오를 헌신적으로 보좌하며 약 8년간 로마에서 머물렀다.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이던 로마에서 보테로는 서양에서 도시와 인구에 관한 거의 최초의 과학적 이론을 담은 『도시의 위대함과 장대함의 원인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국가이성론』, 동서양의 수많은 나라의 자연환경, 인구, 경제, 군사력, 정치 체제 등을 담은 인문지리서 『세계 편람』 등 대표작을 차례로 선보임으로써 자신의 지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중 마키아벨리의 ‘사악한 국가이성’에 대응하기 위해 쓴 『국가이성론』은 종교를 버리지 않고도 국가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선한 국가이성’을 제시함으로써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
1595년, 오랫동안 보좌해 온 페데리코 보로메오가 밀라노의 대주교로 임명되면서 보테로는 그를 떠나 3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의 자녀들을 위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위인의 삶은 담은 『군주』, 『그리스도교 군주』, 『대장군』을 출간했다. 1611년, 생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성 미켈레 수도원으로 물러난 그는 참회의 염을 담은 『연옥에 대하여』를 끝으로 1617년에 세상을 떠났다.

책 소개

분야사회 정치
‘사악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시대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또 하나의 탁월한 근대 정치철학서


『국가이성론』은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이자 외교관이자 성직자였던 조반니 보테로(Giovanni Botero, 1544~1617)의 핵심 저작으로, 1589년 베네치아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이 책은 이보다 앞서 출간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함께 근대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저작으로 꼽힌다. 옮긴이인 부산대 사학과의 곽차섭 교수는 이탈리아 원전을 저본으로 하여 전문성이 돋보이는 엄밀한 번역과 꼼꼼한 역주와 상세한 해설을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보테로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국가이성론』이 출간된 16세기 후반 이탈리아는 종교 전쟁의 영향 아래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이 극심하고, 주위의 세력에 의해 여러 소국들로 분열되고 경제적으로도 침체기를 걷고 있는 가운데 군주가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왕정인 절대주의가 대두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532년에 출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당대 지배적인 그리스교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공화주의에 대한 비전을 통해 중세에서 근대국가로 이행해 가던 시기 근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반니 보테로는 당시 ‘국가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유포되고 있던 ‘사악한’ 마키아벨리즘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이성론』을 내놓았다.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비천함을 강조하고 세속사에 대한 경멸만을 가르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를 쇠퇴의 길로 몰아넣었다고 맹렬히 비판하며 정치와 종교가 결코 화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보테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해 “이보다 더 비이성적이고 불경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단언하면서 가톨릭 신앙과 양심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버리지 않고도 국가의 이익과 교회의 이익이 합치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국가이성론』은 출간되자마자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보테로의 이름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이후 17세기 유럽을 뜨겁게 달군 국가이성 논쟁의 시발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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