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가
인간의 삶이란, 지식을 증가시키고 경험의 폭을 늘려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더 자유로워졌는가? 더 유연해졌는가? 눈매가 더 그윽해졌는가? 상상력과 창의성도 더불어 늘어났는가? 이런 질문들에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지식과 경험이란 게 우리에게 무엇일까? 지식을 쌓은 것이 정말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지식을 손 안에 놓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구심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 닿아 있다.
지식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우리는 ‘개념’이라 부른다. 개념(槪念)의 ‘개(槪)’라는 글자를 보자. 쌀가게에서 쌀 한 되를 살 때, 우선 됫박에 쌀을 수북이 담는다. 그리고 정확히 한 되가 되도록 싹 깎아 낼 때 쓰는 도구를 평미레라고 하는데, 이것을 한자로 ‘개(槪)’라고 쓴다. 곧, 공통의 틀 속에 들어가지 않는 여분의 것이나 사적인 것 또는 특수한 것은 제외하고, 공통의 것이나 일반적인 것만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 이것이 바로 개념이다. 따라서 개념은 출발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식은 이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어떤 특정 유형을 잠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개념’에 굴복 당한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일’ 대신에 ‘바람직한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 대신에 ‘해야 할 일’을, 내가 ‘좋아하는 일’ 대신에 ‘좋은 일’을 하는 데 애쓴다. 자기 욕망을 대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과 이념에 이끌리는 사람은 사명감에 쉽게 포박 당한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겠다는 따위가 그렇다.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준 것인가? 이념과 신념이 만든 ‘우리’는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여러분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인문적 통찰은 우리 앞에 등장하는 사태나 사건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 위에다 올려놓고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 값진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냉철한 이성, 체계에 대한 습득, 본질에 대한 숭배, 정치적 계산, 이념에 대한 철저한 수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최진석 교수는 묻는다. “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