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덜컥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 나니 시집을 내야 한다고, 그것도 첫 번째 시집이니 앞으로 시인으로서 평가가 달려 있는 중요한 일이니 잘 내야 한다고, 제대로 잘 쓴 시들을 묶어 내야 한다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중압감에 거듭되는 고민을 하다가. 그러다 오늘, 머리를 관통하는 섬광 한 줄기를 만났다. 시.집. 시.집.도 집.이네. 집이라면 두 번이나 지어 봤는데. 첫 시집이 아니라 세 번째 집을 짓는 일이라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당연하지. 자, 지금부터 집을 짓는 거다. 세 번째 집은 미래를 위한 집을 짓고 싶다. 자연과 가까운 황토방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벽돌집 다음으로, 함께 편안한 관계를 구하는 시의 집, 단단한 언어로 쌓아 올리는 벽체와 상상이 들고 나는 대문을 가진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