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가장 부러운 능력은 ‘순간 기억력’이었다. 현실에서 그런 능력이 있는 친구는 없었지만 추리물 같은데서 만나는 똑똑한 친구들은 한번 본 걸 그대로 복사하다시피 기억해서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80년대의 시험은 누가 얼마나 잘 외우느냐가 관건이었기에 ‘시험=암기력 테스트’였으니 ‘순간 기억력’만 있다면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인터넷과 PC가 보급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암기력 좋은 사람이 추앙받는 것도 옛말이 되었다. 지식은 이미 컴퓨터 안에 충분히 있으니 언제든 검색으로 찾아낼 수 있다. 중요한 건 있는 정보를 인사이트 있게 엮어내도록 요구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질문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나?

이시한 작가의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가》은 AI시대의 화두인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질문 잘하는 법을 알려준다. 좋은 질문이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많다. Chat GPT를 활용해 적절한 답을 얻고 싶을 때,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얻고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할 때, 인사이트를 키우고 싶을 때 등등. 생활 곳곳에서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유익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몇 부분을 소개해보겠다.

원하는 걸 얻어내는 질문의 기술

남은 평생을 설탕물이나 팔며 보내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Do you want to sell sugar water for the rest of your life, or do you want to come with me and change the world?

존 스컬리는 이 질문에 강한 인상을 받아 애플로 이직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 질문에서, ‘나는 설탕물이나 팔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다음 질문과 같은 질문이에요.

‘원래는 탄탄하고 안정적이며 성공이 보장된,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펩시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펩시CEO를 계속 하실래요, 아니면 이제 막 시작해서 장래가 어찌 될지도 모르고, IT문외한이라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 IT기업의 CEO를 하실래요?’

(p.127)

비즈니스 현장에서 원하는 걸 질문으로 얻어낼 수 있을까? 능수능란하게 상대를 설득해서 원하는 인재를 얻거나 가격을 조정하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사람들. 협상의 달인이다. 그들의 질문을 살펴보자. 흔히 생각하는 질문의 형태와는 달리 언뜻 보기엔 객관적이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프레임이 짜여진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함정 질문이다. 이 책은 성공적인 함정 질문의 사례로 스티브 잡스가 펩시콜라 사장인 존 스컬리를 영입할 때 썼던 유명한 질문을 소개한다.

설탕물 팔기 vs 세상 바꾸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설탕물을 팔거나 세상을 바꾸는 일, 둘 중의 하나는 꼭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엔 두 가지 말고도 셀 수 없이 많은 일이 존재하지만 질문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인 두 가지 선택지로 상대를 몰아간다. 결과가 좋아서 성공한 함정 질문의 예로 남았지만 실패했다면 흔한 사탕발림이 될 뻔했다.

이 외에도 질문으로 대화의 패턴을 설계하거나 상대의 감정을 유도하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여 원하는 답을 얻는 등 비즈니스에서 활용할만한 방법을 보여준다. 물론 반대편 입장에서 보면 조심해야할 질문들이기도 하다.

지식을 지성으로 만드는 질문법

책, 영화, 드라마 등 재미있게 본 텍스트를 정리하고 그것을 꾸준히 할 수 있게 루틴을 만든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쌓일뿐더러 지식을 정리하고 가공하는 생각의 기술도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대답을 채워볼 수 있죠.

? 이 책의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면?

? 왜 제목이 호밀밭의 파수꾼인가?

? 주인공의 지향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나?

? 왜 미국인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을까?

? 이 소설의 의미는 무엇일까?

(p.188)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은 좀 더 근본적인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고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자문을 통해 중학생도 이해할 만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진짜 자기 지식이 되어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할 때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방법을 통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여러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밝히며 질문을 통해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다.

여기 나오는 다섯 가지 질문은 책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리뷰 쓰는 데도 도움이 되는 팁들이다. 리뷰를 남겨야 내 것이 된다는 생각에 쓰긴 하지만 ?번과 ?번 사이에서 맴도는 질문만 하다 어영부영 끝낸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얻는 지식도, 리뷰의 수준도 달라질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시도는 해봐야겠다.

Chat GPT 활용법

AI는 사람의 니즈를 알아듣고 그에 맞는 답을 내줍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니즈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의 니즈를 정확하게 형상화하고 인지하는 것,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질문입니다.

(p.274)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같은 건 AI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이 정확해야 한다.

저자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Chat GPT를 헷갈리게 하는 은유나 에둘러하는 표현을 삼가고, 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질문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그 예로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방법 찾기나 동화책 주인공의 외모 일관성 유지를 위한 기술적인 방법을 묻는 질문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Chat GPT의 답이 놀랍다. 새로운 시대에는 확실히 잡다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보다 핵심과 맥락을 파악하여 제대로 질문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챗봇의 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몇 해 전 104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오랫동안 살던 세종시가 개발되어 말년에 몇 번이나 이사하셔야 했다. 새집으로 옮길 때마다 신형장비가 추가되어 집은 편리해졌지만 할머니의 생활반경은 점점 줄어들었다. 터치 하나로 난방이 되고 불이 켜지고 요리가 되는 집. 하지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디지털 도어락이 낯설어 나중에는 산책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셨으니까. 나라고 다르겠는가.

아직 Chat GPT를 활용해 업무를 보거나 공부를 하진 않지만 머지않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필요해보이지 않던 스마트폰이 지금은 신체의 일부처럼 된 걸 보면 Chat GPT가 생활의 일부 아니, 중심이 되는 날은 개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다가올 것이다.

기계치라 배우는 게 늦다는 핑계도 한두 번이다. 자동차의 원리를 몰라도 운전을 하듯 GPT는 그런 약점까지 보완해준다지 않은가. 제목처럼 질문을 잘해 똑똑한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과분한 이야기이고 새로운 시대에 조금이라도 적응해서 뒤처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