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책이라도 각각의 장(章)이 그 자체로 독립적이려면 약간의 반복이 허용된다. 이 책과 같이 수십 편의 글(수필)을 모은 ‘모음집’도 그런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간 다른 종류의 반복에 대한 두 가지 의문─실은 여러 가지가 엉클어져 있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우선 각각의 글에서 느껴지는 반복이다. 즉 퇴고 불충분, 문장의 배열 혹은 글의 구조 등의 문제가 뒤얽혀서, 결과적으로 ‘반복적 성향’이 감지되는 부분이 종종 있다. 별수 없이 그럴 때는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둘째, 입구(소재)는 다양하지만, 출구(귀착, 다다름)가 같은 경우가 많다는 의문이다. 이는 이미 각각의 글에 느꼈던 ‘반복적 성향’과 공명하여 즐기기보단, ‘견뎌야 할’ 진동을 내고 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설교에 가까운 인상도 다분하여. 결국, 이를테면 이런 생각이 들고 만다. ‘그래 맞아요. 어쨌든 도덕을 훌륭한 가치이죠. 하지만 전 지금 지옥에 있는 기분인걸요?’

한편 기지(機智, wit) · 아이러니 · 패러독스와 같은 글의 양념이 부족해서 흥이 충분히 살지 않는다. 여백도 부족하다. (반복하는 인상을 풍길까 두려우나.) 너무 모범적인 태도가 문제라면 문제라고나 할까? 「책머리에」에 찰스 램이 거론되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램에게 바치는 만큼의 충분한 “찬미와 존경”을 이 책을 향해 품기는 어려웠다. ─물론 (두 필자의) 수필의 종류가 (전체적으로) 다르고 수필의 종류에 따라 요구되는 양념의 종류 또한 다르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단순히 저자의 문체 탓으로 보는 것은 동정심을 유발하니 안 될 일이고, 아마 수십 년간의 외국 생활에 따른 약간의 후유증과 세심히 글을 손질하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리라. ─참고로 이 책은 1997년에 출판되었으며, 나는 저자가 근래에 쓴 저서를 읽어 보지 못하였다.

내가 왜 이럴까? 어쩌면 기대가 너무 컸던 것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책을 읽은 독자로서 너무 잠자코 있으면 사기꾼이라고 욕을 먹을지 모르고, 그렇다고 너무 조심성 있는 태도로 나오면 위선자라 낙인찍힐까 두렵고. 사기꾼, 위선자보다는 글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바보가 ‘도덕적으로’ 안심이 되니. 시작부터 용기 내어 의문을 제기해 보았다.

나는 부아를 내는 것이 아니며 좋은 부분도 다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가슴으로도 말할 수 있을 때. 독자의 머리도 흔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note

목차에 나온 제목만으로도 각 글의 입구(소재)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으므로 그것에 대한 설명은 삼간다.

여기선 한결같이 악역으로 마무리하려고 하였는데─선역을 해줄 사람은 많을 테니.

어쩌면 좋을까? 너무 건방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