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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관상학
글쓴이
아리스토텔레스 저
출판사
그린비
출판일
2024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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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아리스토텔레스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고의 목적”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북부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그가 17살 때 어머니마저 죽은 뒤 후견인인 프록세노스에 의해 아테나이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인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철학의 후원자였던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 헤르메이아스에게 갔다. 거기서 그는 헤르메이아스의 조카인 피티아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기원전 345년에 헤르메이아스가 페르시아인들에게 살해되자, 그는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로 갔고, 거기에서 수제자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된 테오프라스토스를 만났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나중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기원전 335년에 그는 다시 아테나이로 돌아와서,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기관인 리케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소요학파의 기원이 된다. 이 시기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가 쓴 책들과 글들 다수는 이 기간에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지성과 폭과 깊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가 다룬 분야들은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아주 폭이 넓었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형이상학』, 『자연학』, 『정치학』, 『범주론』, 『명제론』, 『수사학』, 『시학』 등이 있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아테나이에서는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고 그는 불경죄로 고발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났고, 그 다음 해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책 소개

분야인문
서양 고대에 쓰인 가장 영향력 있는 관상학 작품은 단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으로 알려져,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모음집’에 실려 전해지는 『관상학』이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관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작(眞作)이 아니다. 즉 뤼케이온 학원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기원전 3세기경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양 문화를 통틀어 살펴본 인간 행동의 뿌리 깊은 공통점은 인간이 외부 대상 세계에 대한 관찰과 타인에 대한 ‘관상’에 기반하여 움직였다는 점이다. 신화시대에는 그 점이 역동적 기제로 작동했다. 신화가 지각한 것은 외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성격이 아니라 ‘관상적 성격’이었다. 그러나 감정에 근거한 ‘관상적 태도’는 오늘날의 문명화된 생활에서도 그 힘을 상실하지 않았다. 칸트는 “외면에 의해 내면을 판단하는” 관상학은 한낱 ‘취미판단’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서양 고중세를 거쳐 근대에 접어들면서 관상학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관상학은 대중들 사이에서 취미와 취향으로 살아남아 합리적 판단보다는 인간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과 편견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합리적 사고가 기능을 멈추고 어떤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힐 때, 관상학적 사고가 언제든 인간 문화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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