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너에게 곧 끝이 보일 거라는 말로 위안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 어차피 그 터널을 나오면 멀지 않아 또 다른 터널의 암흑 속에 던져질테니까. 하지만 너는 알게 될 거야. 터널을 여러 개 지나 다보면 곧 목적지에 가까워 있다는 걸. 출발 할 때 정해둔 목적지와 다소 다를 수 있겠지. 그래도 너와 나, 우리는 알고 있어. 중요한 건 목적지보다 그 여정 속의 성장, 성숙이란 걸.
글을 쓰는 나에게, 무엇이든 결과가 중요하니 당장 안정 적인 돈을 벌어오라는 주변의 압박이 목을 죄어왔어. 넌 기 억하니. 잘 하고 있으니 지금처럼만 하라고 날 다독였던 너의 말. 너와 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터널을 지나는 것뿐인데 의미는 무엇이며 결과는 다 무엇일까. 다만 내가 잠시 터널을 빠져나와 햇살을 맞을 때 터널 속 너에게 나의 여유 조금과 따스함 그리고 시간을 내어 줄게. 같이 걷자 우리.""
--- 본문 중에서
갓난아기가 제대로 걸음마를 하기까지 몇 번의 엉덩방아를 찧는지 아는가? 대략 이천 번 이상 넘어져야 세상을 딛고 첫걸음을 뗄 수 있다. 태어난 지 십이 개월 밖에 안 된 나는 이 천 번의 실패를 딛고 두 발로 걷기에 성공했다. 자그마치 이천 번이다. 한 살만도 못한 서른의 삶을 산다. 이천 번의 용기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한 두 번의 실패에도 지레 겁을 먹고 도전을 두려워한다. 한 살 쟁이 아기는 넘어지는 게 아프지 않아서 다시 걸음마를 뗄 수 있었을까. 생각이 많으면 고달프고 상상력이 풍부하면 괴로운 법이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몸 을 내던지고 싶다. 될 때까지 넘어지고 실패해도 또 다시 일어 설 용기가 자라면 좋겠다. 몸만 자라버린 어린이 같아서, 또는 아직 엄마 뱃속을 유영하는 늙은 태아 같아서 스스로를 원망 한다. 이천 번의 실패도 이겨낸 '나'라는 걸 잊지 말자. 한 살 보다 튼튼한 몸과 마음의 근육을 가지고 있으니 다시 넘어지고 찧어보면 좋겠다.
--- 본문 중에서
탄력적으로 살아야 한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금방 일어날 수 있는 삶이 더 좋다. 쓰러지지 않으려 애쓰고 넘어지면 큰일 이 날까 용쓰며 사는 건 솜뭉치를 이고 물에 들어가는 꼴이 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나만의 심지가 곧은 인간이 고 싶었다.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일까. 곧은 것은 부러지기 쉽고 자기만의 틀에 갇히기 쉽다. 그러니 잘 휘어지지만 금방 내 자리로 돌아오는 삶을 살고 싶다. 같은 이치의 이야기인데 우리는 대부분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살면서 단 한 번 도 아프지 않을 수는 없으니 사실 우리가 희망해야 하는 것은 아프지만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엇비슷한 내용 같아도 마음에서 작용할 때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기를 쓰고 버티려 하기보다 넘어졌을 때 잘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넘어질 수 있고 망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 살 다보면 아픈 날도 수차례 올 것이다. 그때마다 '회복력'이 내 삶을 구원해 줄 힘이 되리라 믿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