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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서경덕
글쓴이
김시습 외 1명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24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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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김시습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했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1세 때 삼각산 속에서 글을 읽고 있다가 단종이 손위(遜位)하였다는 말을 듣자 문을 닫고서 나오지 아니한 지 3일 만에 크게 통곡하면서 책을 불태워 버리고 미친 듯 더러운 뒷간에 빠졌다가 그곳에서 도망하여 행적을 불문(佛門)에 붙이고 여러 번 그 호를 바꾸었다. 미친 듯 시를 읊으며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며 한 세상을 희롱하였다. 비록 세상을 선문(禪門)에 도피하였다 하여도 불법을 받들지 아니하니 세상에서 미친 중으로 그를 지목하게 되었다.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 1458년, 24세에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와 서울에 안착한 시기도 있지만 방랑자로 긴 세월을 보냈다. “매월이라 당(堂)에다 이름한 것은 금오 매월이란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한다. 쉰아홉 되던 해 봄날,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비 내리는 가운데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2,200여 편의 시와 함께 정치 견해를 밝힌 산문들이 『매월당집』에 실려 있고, 소설 『만복사의 윷놀이』, 『이생과 최랑』, 『부벽정의 달맞이』, 『꿈에 본 남염부주』, 『용궁의 상량 잔치』가 『금오신화』에 전한다.

책 소개

분야인문
주류 학문과 정치의 바깥에서
한국사상에 폭과 깊이를 더한 조선의 경계인들

창비 한국사상선 제3권 『김시습·서경덕: 조선사상의 새 지평』은 조선 초기 성리학의 두 대가 김시습과 서경덕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책이다. 세간에 ‘조선의 신동’ ‘『금오신화』의 작가’로 언급되는 김시습은 비단 탁월한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당대의 문제적 사상가로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호사가들로부터 ‘황진이의 스승’으로 불리거나 ‘칩거한 천재’로만 분류되곤 하는 서경덕은 사실 자연철학에서 일가를 이루며 조선사상사의 새 지평을 연 철학자였다.

김시습, 서경덕은 서로 닮은꼴이다. 둘 다 무인 집안 출신에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며 물욕이 없었다”.(14면) 다만 김시습이 떠돌아다니며 살았던 것에 비해 서경덕은 개성의 화담에서만 지냈다. 이 같은 정주(定住)와 비정주(非定住)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시습이 불교와 유교를 넘나들었다면 서경덕은 일생 내내 기(氣)철학에 몰두했다. 두 인물의 닮은 듯하면서 판이한 면모를 비교해가며 읽는다면 이 책의 묘미가 한층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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