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작가의 장편소설 『적산가옥의 유령』은 유령이라는 제목이 있지만 단순한 공포물이나 유령담을 넘어, 식민지 시대의 상흔과 현대인의 고독을 한 채의 집 안에서 그리고 있다.

주인공 현운주는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서른 살 여성이다. 그러나 외증조모 박준영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녀의 일상을 흔든다. 준영은 50년 넘게 머물던 적산가옥 별채에서, 바닥에 귀를 댄 기묘한 자세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남긴 유언은 기묘하다. 바로 적산가옥을 운주에게 남기며 30살이 되던 해에 1년간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른이 된 운주는 일본에서 느낀 외로움과 차별의 기억을 안고 귀국해, 오래된 집과 마주한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상인이 지은 것으로, 그 이름부터가 ‘적이 산 집’을 뜻한다. 건물 자체가 이미 역사적 폭력의 증언이다.

운주가 남편 우형민과 함께 거주를 시작하자,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잇따른다. 스스로 열리고 닫히는 문, 존재를 알 수 없는 소리,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는 환영까지. 형민은 이를 단순한 예민함으로 치부하지만, 운주는 점점 집이 품은 비밀에 끌려간다.

이때부터 서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1940년대, 박준영이 간병인으로 일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상인 가네모토 가문이 등장한다. 그들은 부유했지만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원망의 상징이었고, 그 집의 외아들 가네모토 유타카는 병약하면서도 ‘고통을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유타카의 비극은 아버지의 탐욕 때문이다. 그는 아들의 능력을 착취해 막대한 부를 얻었고, 그 대가로 유타카는 자신의 몸을 해치며 예지력을 발휘해야 했다. 준영은 고통 속에 있는 유타카에게 연민을 느끼고, 둘 사이에는 미묘하면서도 깊은 유대가 싹튼다. 하지만 별채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은 결국 피와 비명을 집에 새기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저주와 흔적이 된다.

현대의 운주 앞에 나타난 유령은 바로 그 유타카다. 그는 단순히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증언자이자 수호자이며, 억압된 과거의 역사 그 자체다. 운주는 꿈과 환각을 통해 과거의 장면을 공유하며, 외증조모가 죽기 전 바닥에 귀를 대고 있던 이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유타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몸짓이었다.

결말에 이를수록 드러나는 남편 형민의 어두운 면모는 또 다른 긴장을 만든다. 운주는 현실의 폭력 앞에서 위태로워지지만, 유령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난다. 이때 운주는 처음으로 유령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건 준영과 나 사이의 약속이야” (182쪽)

이는 그가 단순한 혼령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연결의 존재임을 증명한다.

조예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일한 장르가 호러”라고 언급한다. 이 말이 작품 전체를 설명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상징성이다. 집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시대의 폭력과 개인의 비밀, 사랑과 공포가 층층이 쌓이는 그릇이다. 이 소설은 그 그릇이 어떻게 기억을 저장하고,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적산가옥의 유령』은 무섭지만 따뜻하고, 슬프지만 치유의 여운을 남긴다. 산 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유령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런 유령이라면 유령이 아니라 수호령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젊은작가조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