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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선생 일화집
글쓴이
이상재 저
출판사
한국학자료원
출판일
2023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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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이상재

개항기 때, 중추원1등의관, 내각총무국장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YMCA 전국연합회회장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이끈 관료 · 개신교인 · 독립운동가.
1850~1927. 충남 서천 출생. 본명 계호季皓, 호는 월남月南.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YMCA 전국연합회회장, 신간회 창립회장.
1881년 신사유람단 수행원으로 유길준, 윤치호, 안종수, 고영희 등 26명과 함께 일본에 다녀옴. 1887년 6월 박정양이 초대주미공사로 갈 때 2등서기관으로 채용됨.
1894년 갑오개혁 후 학무아문참의를 지냈고, 그 뒤 내각총서 및 중추원 1등의관 등을 지냄. 1896년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부회장이 되었고, 1898년 만민공동회를 개최함. 1902년에는 개혁당 사건으로 아들과 3년 동안 복역함. 1923년 보이스카우트 초대 총재, 이듬해 조선일보사 사장으로 취임.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으나, 3월 29일 병으로 별세함. 1927년 4월 7일 장례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社會葬으로 집행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됨.

유저로는 논문집 『청년이여』를 비롯하여 『청년위국가지기초(靑年爲國家之基礎)』·『진평화(眞平和)』·『경고동아일보집필지우자(警告東亞日報執筆智愚者)』·『청년회문답』과 『상정부서(上政府書)』 제1·2, 『독립문건설소(獨立門建設疏)』 등 다수가 있다.

풍자와 기지가 넘쳐 차원 높은 해학으로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순화시켰고, 악독한 일제의 침략과 불의를 날카로운 풍자와 경구로써 제어하였다. 사망한 해인 1927년 4월 7일 사상초유의 성대한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한산 선영에 안치되었다. 1957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로 이장되었다. 신도비(神道碑) 비문은 정인보(鄭寅普)가 지었으며, 묘비(墓碑)의 비문은 변영로(卞榮魯)가 지었다.

책 소개

분야역사
이 책은 1956년 대한민주여론협회에서 발행한 金乙漢 저 [월남선생일화집(月南先生逸話集)] 단책으로 월남 이상재선생의 일화와 다수의 사진 자료등을 수록한 책이다.

영원한 청년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은 세계열강이 우리나라를 침탈하려고 각출을 벌이던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과 YMCA 운동을 통해서 민족을 계몽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의 진로를 개척하는 데 앞장선 우리 민족의 선각자이자 스승이다. 선생께서 탐관오리의 부패상을 탄핵하다 음모로 인해 옥고를 치르셨으며 이때 처음 성경을 접하시면서, “기독교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기독교 신자가 되셨고, 최초의 한국인 YMCA 총무로서 나라를 잃고 방화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길을 밝게 열어주는 등불이 되어 독립의 초석이 되셨다.

선생께서 일제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전개하셨던 물산장려운동과 절제운동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현시대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신 강직한 성품과 민족을 하나로 아우르는 따듯한 동포애는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의 우리 사회를 바로잡는 길잡이가 됨은 물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한국인의 사표가 될 것이다. 특히 남북분단의 세월을 딛고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야만 하는 우리들은 선생의 민족정신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한다. 무엇보다도 선생의 애국심을 본받아야 하겠지만 앞선 것을 배우고 믿음대로 행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선생의 삶을 기리는 것이야 말로 후손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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