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독립선언 지도자 오세창의 부친으로 알려진, 조선 역관 오경석.
실은 그가 추사(김정희)와 환경(박규수)의 아끼는 동지이자 제자였으며 혁명가 김옥균을 눈 뜨게 하고, 대원군의 쇄국에 저항한 인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식의 넓이가 곧 세계의 크기임을 일찍 알아차린 역관 오경석은 청나라의 멸망, 서양의 침범, 천주교의 좌절, 일본의 대두를 목격하며 장차 조선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확인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이른다.
대대로 역관을 이어 온 집안 내력을 따라 역관이 된 오경석은 13차례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를 오갔다. 그 과정에서 중인 기술직 신분으로 오그라들었던 그의 인식과 시야가 비로소 개화할 수 있었다. 사대의 눈이 아니더라도 오경석에게 청의 예술과 지식, 서책은 광대하고 심오했다. 유명 인사들과의 교류 역시 그를 단단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위대하고 강력하고 헤아릴 수 없는 자산으로 가득한 조선의 상국 청. 그런 청이 아편전쟁을 거치며 멸망에 이른다. 서양의 검은 배들이 몰려와 대포를 쏘고, 황제의 궁궐 원명원을 불태웠다. 내부로는 태평천국의 난을 비롯한 민란이 들끓어 관아로 향하는 세금 마차가 습격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경석은 궁금했다. 도대체 위대한 청국을 무너뜨린 서양은 어떤 곳인가. 그들이 몰고 온 배며 쏴대는 무기들은 또 무엇인가. 십자가를 앞세운 서양 천주교와 선교사, 신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오경석은 청이 저 지경이라면 조선이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알아야 한다, 준비해야 한다, 서양과 통교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무력을 만나 조선 역시 멸망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 환경 박규수를 사행길에 만난 것은 그런 오경석에게 빛줄기와도 같았다. 담백한 인상과 합리적인 생각의 박규수를 오경석은 단번에 존경하게 되었다. 박규수 역시. 침착하면서도 날카로운 젊은이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경석이 중인 친구 유대치와 함께 북촌의 박규수 자택 사랑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김옥균과 이후 충의계라 불리는 이들을 만나 세계 정세를 풀어놓았다. 새로운 문물과 청의 상황도 깨우쳐 주었다. 양반인 자신들이 중인들에게 배울 것이 있으랴 싶었으나 그들은 모두 단번에 오경석과 유대치를 스승으로 모셨다.
오경석은 병들고 있었다. 조선의 현실과 세계 정세의 괴리가 그를 파고들었다. 뇌경색이 발발했고 걸을 때 조금씩 절게 되었다. 그 몸으로 일본 화륜선에 올라 문정(조선 관리가 정황을 파악하는 일)에 나섰다. 그 배에서 오경석은 차라리 한강을 타고 들어와 무력시위(포탄발사)를 원한다고 말해 좌중을 놀래켰다. 외국과의 통교에 도무지 관심조차 없는 조정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오경석의 간절함은 그렇게 드러났다. 강화도조약이 논의 되기 시작했을 때 이쪽이든 저쪽이든 오경석은 문제없는 인사로 인정되었다. 다만, 한 사람 대원군만은 적의를 드러냈다. 자신에게 들렀다 가라는 대원군의 명을 거부하고 오경석은 혼자 조약문을 품고 한성과 강화를 오가며 분투했다. 박규수가 대원군의 위해를 걱정해 경호원을 붙여줄 정도였다. 그러던 중 대원군으로부터 의심스러운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일본에 망명했던 김옥균이 상하이로 가는 배에 오른다. 동행한 사람들과 스승 오경석의 과거를 회상한다. 강화도조약과 스승의 가르침과 그리고 스승의 죽음. 상하이에 도착하면 새로운 꿈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이와다, 아니 김옥균이 배에서 내린다. 그의 등 뒤에 권총을 든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