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가 오늘날 우리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초기 작품으로『데미안』에서 보여준 철학적 아포리즘과는 달리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낸 진솔한 일기 같은 작품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들여다보듯 뼈아프게 생생한 이 작품은 무려 108년 전, 헤르만 헤세가 스물아홉 살 되던 해에 발표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여기서 하나 나아진 것이 없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뒤로 한 채, 자신의 개성이 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친구와의 우정, 즐거움, 기쁨이라는 것을 누려보기도 전에 아이들은 공부와 입시의 노예가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일등이 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배우는 이상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기본’이란 것이 없다. 그러니 온갖 비리가 횡행하고, 공동체의식이니 이런 기본 덕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헤르만 헤세는 작품 전반을 통해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와 학교라는 권력을 고발한다. 작가는 특히나 개성적인 천재성을 갖고 있는 학생과 선생의 관계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선생들은 자기 학급에 천재가 하나 있는 것보다 멍청이가 여럿 있는 걸 선호한다면서 다루기 힘든 별난 아이가 아니라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성실한 아이를 길러 내는 것이 교사의 임무라며 비꼰다. 그러면서 개인의 창의성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인다.
우리는 천재적인 학생들의 상처가 언제나 거의 아물고, 또 그들이 고통스러운 학교생활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훗날 죽은 뒤에라도 멀리서 아름다운 후광에 휩싸여 후세대 교사들에 의해 걸작이나 고결한 모범으로 소개된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는다. -139쪽
이는 헤세 자신이 겪은 일이고, 그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기에 더 강한 울림을 갖는다. 한스는 누구나 큰 인물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 아이였고, 한스 스스로도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게 한스가 정말 원한 것이었을까? 어른들의 욕망을 대신 욕망한 것은 아닐까? 어른들은 아이의 삶이라는 수레에 너무 많은 기대와 욕망을 투사하고 그 수레바퀴 아래 깔리지 말고 남들보다 앞서 끌고 나가라고 등 떠민다. 한스의 비극적 몰락과 하일너의 탈교, 그리고 힌딩거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