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서양인 러시아 건축사 '세레진 사바찐'이 기록한 을미사변, 그 하루의 기억.
청일전쟁 직전 일본 군대는 1894년 7월 23일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일본의 ‘경복궁 침입 사건’ 이후 고종은 일본의 감시를 받으면서 항상 불안에 시달렸다. 최고 권력자 고종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 상처는 고종의 심야 집무와 연결되었다. 일본인들의 활동을 궁궐에서 감시하기 위해, 고종은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 베베르(К.И. Вебер), 미국 공사 실(John M. B. Sill), 미국인 고문관 그레이스하우스(Clarence R. Greathouse)의 조언에 따라 외국인을 경복궁에 상주시켰다. 다름 아닌 장군 다이(W. M. Dye), 대령 닌스테드(F.J.H. Nienstead), 건축사 사바찐(А. И. Середин-Сабатин) 등이었다.
경복궁에는 항상 두 명의 외국인이 체류하였다. 사바찐은 1894년 9월부터 경복궁에 1주일에 4일씩 저녁에 출근하여 아침에 퇴근했다.
그동안 명성황후의 암살과정과 시해인물 등의 논란이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그 논란은 일본 정부의 조선 식민지 정책 및 왕비 살해 책임 등의 본질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조차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여우사냥’으로 풍자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었다. 어느 때와 무슨 일을 물을 것 없이 진실은 살아남고 거짓은 소멸하였다.
이 책은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 45분경 명성황후 시해 당시 유일한 서양인 목격자로 알려진 러시아 건축사 사바찐이 써 내려간 그 마지막 날 24시간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다. 당시 궁궐 순찰을 돌고 있던 서양인의 눈에 비친 긴박했던 그날 궁궐의 모습, 궁궐시위대와 일본군과의 충돌 등 치욕의 역사인 명성황후의 마지막 날, 을미사변을 시간대별로 드라마틱하게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