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어느덧 오십대 중반에 이르렀으나 나에게도 아직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피터 한트케의 시구에 등장하는 아이마냥, 그 시절 나를 둘러싼 세계는 온통 의문덩어리였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나는 여기 있고/ 저기에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중략)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조각은 아닐까?”(「아이의 노래」 일부) 그러한 궁금증에 나름의 해답을 마련하면서 살다보니 인문학자가 되었고, 내 영혼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제주 섬에 관한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나는 누구인가’ 물을 때나 ‘어떻게 살 것인가’ 가늠할 때, 내가 제주 출신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상수常數였다. 학교 근처 우당도서관 향토사자료실을 들락거렸던 고등학생 때도 그러했고, 대학교에 진학하느라 제주 섬을 떠나온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굴욕감을 동반한 서울말 사용에 길들면서, 거부감을 안은 채 ‘저들’의 기준에 따라 ‘나’의 생활 방식을 바꾸면서, 제주에 대한 공부를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제주 공부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겠노라는 발버둥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책 제목 “리바이어던 안의 야수, 리바이어던 밖의 공동체”에 국가와 제주 공동체의 관계를 담고자 했다. 토머스 홉스는 자연에서의 인간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놓인다고 전제하고 ‘리바이어던’, 즉 강력한 국가를 해결 방안으로 제안하였다. 그렇지만 제주 공동체의 역사는 홉스의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제주 공동체는 척박한 자연 조건에 유폐된 인간이 어떻게 상호부조의 질서와 문화를 일구는지 입증하는 사례다. 난폭한 야수마냥 제주 공동체를 끊임없이 할퀴고 물어뜯은 것이 리바이어던이었다. 그 점에서는 전근대 고려ㆍ조선, 근대이행기 대한제국ㆍ일제, 근대 미군정ㆍ대한민국 어떠한 중앙권력도 다를 바 없었다.
제주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를 깊게 할수록 원자료原資料의 중요성을 실감하였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원자료가 체계적으로 번역ㆍ출간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덕분에 나는 그동안 가져왔던 제주 문화의 특징에 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하였고, 인문학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개별적인 특징들을 통일된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Ⅰ부 ‘제주 문화의 기원과 형성, 변동’에 묶은 글들이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리바이어던 안의 야수, 리바이어던 밖의 공동체』 출간에 앞서 제주 관련 중요한 사료들을 정리ㆍ번역해 주신 역자들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연구자, 비평가가 작품을 분석ㆍ평가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증과 기준이 필요한데, 나의 경우 제주 섬 소재 문학작품을 파악하는 데에는 Ⅰ부 내용이 근거가 된다. Ⅱ부 ‘제주 공동체주의와 4·3문학’에 묶은 글들은 그렇게 씌었다. 분석ㆍ평가라고는 하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보다 앞섰던 것은 경의敬意였다. 해당 작가들이 나서서 만든 길을 내가 걷고 있으며, 내가 가지게 된 고민을 그분들이 먼저 펼쳤다는 데서 생겨난 자연스런 심정이었다. 기실 작품 분석의 어떤 대목에서는 작가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겹쳐 있기도 할 터이다. 그렇지만 주관에 함몰되지 말아야 할 연구자로서의 위치는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