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혁명이란 무엇인가?”
도산 안창호가 벼려낸 변혁의 정신을 오늘 다시 읽는다
창비 한국사상선 제19권 『안창호: 민족혁명의 이정표』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핵심적 지도자이자 탁월한 사상가였던 도산 안창호의 논설과 연설을 모은 책이다. 주로 연단에서 대중을 상대로 자주독립의 사자후를 터뜨리던 그였기에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할 기회를 갖진 못했고, 그렇기에 안창호 특유의 혁명론이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적었다. 그렇다보니 안창호의 일면, 즉 독립운동의 조직가이면서 노선 갈등의 조정자로만 칭송받거나, 남한과 북한으로부터는 각각 준비론자와 민족개량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 책을 통해 안창호가 하나의 주의, 주장에 얽매이지 않고 계급, 이념, 노선을 두루 섭렵하며 중도 통합을 지향했음을 다채로운 산문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안창호는 당시 태동하던 동아시아 근대 자본주의를 목도하면서 민족과 근대성, 독립과 혁명 등의 여러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맞닥뜨린 현실을 바탕으로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하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했다. 이에 안창호는 단지 각계각층의 일시적인 단합이 아니라 민족혁명이라는 기치 아래에 대공주의(大公主義)를 펼치고자 했고, 이는 오늘날 ‘변혁적 중도’로 연면히 계승되고 있다.
이제 안창호의 진면모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
안창호는 1878년 평안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유학을 배우고 2년가량 신학문을 익혔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따지는 습관을 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과 중국 사상가 양계초의 책을 토대로 세계관을 정립한 그는 당대 조선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즉 안창호의 “최고의 스승은 당대의 구체적 현실과 정세”(20면)였던 것이다. 그는 개화파이면서 기독교도였는데, 그가 민족혁명의 핵심적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갑신정변이 아닌 동학농민혁명을 첫손으로 꼽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마디로 그는 “개벽을 향해 열린 개화파”(22면)였는데, 그가 일상에서 동학의 수련을 연상하게 하는 수양을 강조했고, 동학의 평등주의와 인본주의에 공감했으며, 한반도 신종교에 두루 열려 있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