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불’의 조선사회에서
시대와 호흡하며 불교사상을 이어간 거승들
창비 한국사상선 제4권 『함허기화·청허휴정·경허성우: 불교사상의 계승자들』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 정책하에서 시대와 공존하고 스스로의 활로를 찾으며 불교의 정통을 계승하고자 한 세 승려의 글을 모은 책이다. 특히 불교 배척의 기세가 가장 심했던 조선 초기에 불교의 가치를 지키고 선종과 교종의 틀을 지킨 함허 기화, 임진왜란 중에 승려들을 이끌고 구국 항쟁을 벌임과 동시에 수행 체계를 새로 정립해 조선 후기 불교의 지향을 제시한 청허 휴정, 근대 이행기에 선의 중흥을 도모한 경허 성우의 삶과 생각을 담아냈다.
고난 속에서 조선 불교의 원형을 만들어낸 3인의 승려
고려 우왕 때인 1376년 태어난 함허 기화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우고 성균관에 입학해 성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성균관 동기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했다. 당시 그가 만난 스승은 후에 이성계의 실질적 조언자가 되는 무학 자초(무학대사)였다. 그 뒤 조선이 세워지고 3대 태종이 강력한 억불정책을 실시하면서 불교 11개 종파의 242개 사원이 국가의 운영하에 놓였다. 뒤이어 세종 대에는 불교 종파가 선종과 교종 양종 체제로 개편되었다. 그때 선종에 소속된 함허 기화는 단순히 자기 종파에 머무르지 않았고 불교가 선종과 교종으로 나뉜 근본적 원인을 면밀히 탐구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능력이 같지 않아서” 즉 “대상의 능력에 따른 방편의 차이로”(21면) 선종과 교종이 나뉜 것이므로 인간이 자비를 펼침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함허 기화는 또한 유교와 불교의 공존을 주장하면서, 당시 불교 무용론의 분위기 속에서도 불교가 맡아야 할 역할이 있음을 설파했다. 불교가 유교의 통치이념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도 부합하는 종교임을 꾸준히 알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