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다발적으로 재현되는 세계
자유분방한 언어로 유쾌한 사유를 펼쳐온 정익진 시인의 새 시집 『스캣』(문예중앙시선 033)이 출간됐다. “깊이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자유로워지고 유쾌해지는 시”(김상미 시인), “보디빌더의 몸, 헬스클럽의 시”(김언 시인)라는 평을 들으며 기이하고도 유머러스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정익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조작된 기억과 이미지, 언어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다.
정익진이 바라보는 세계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다른 얼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재현되는 큐브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는 “신기루가 사라지고 난 뒤”나 “사자에게 물려 가기 직전”의 풍경이 겹쳐지고, “책 밖으로 천천히 지느러미를 저으며/지나가는 물고기들”과 같은 이질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해설을 쓴 조재룡 평론가는 “(정익진 시인은) 어떤 사실을 확인하러 모험의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 후차적으로 주어질 저 미지가 뿜어내는 공포를 마다하지 않”는다며 “오로지 실현 불가능한 상태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에 의존해서만 현실을 재구성해”내고자 한다고 평한다. 정익진 시인이 그러한 구성적 작법으로 발생시킨 ‘어긋남의 나열’을 전체로 조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열리는 인식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