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스페인 알타미라동굴에서 발견된 벽화로 고고학계가 소란스러웠다.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며 역동적인 동물들을 묘사한 일련의 그림이었다. 벽화를 발견한 아마추어 고고학자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올라는 마드리드대학교 현장 조사 팀과 함께 벽화가 구석기시대 유적임을 밝혀냈지만 고고학계에서는 벽화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었고, 사우투롤라는 심지어 사기죄로 고소당하기까지 했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다른 동굴들에서도 유사한 벽화가 발견되면서 알타미라동굴벽화의 진위가 인정받았고, 현재는 라스코동굴벽화와 함께 선사시대 동굴미술을 대표하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위 논란의 발단은 벽화가 ‘선사시대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뛰어나다’는 데 있었다. 연대 분석을 통해 구석기시대 미술임이 밝혀진 후에도 ‘미개한’ 선사시대 인류가 그토록 생생한 사실주의적 표현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심은 끈질기게 남았다. 여기에 이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미학적 도약’을 이뤄냈다는 것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라스코동굴벽화 앞에서 조르주 바타유는 인류가 라스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확신했다. 라스코동굴의 인류가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그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전까지 존재했던 것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예술을 ‘인간화hominization’의 증거로 본 바타유는 라스코동굴을 인류가 비로소 ‘비실용적’인 활동을 시작한 출발점, ‘인간이 태어난 장소’로 격상시켰다. 라스코와 알타미라 등의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들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예술’이 후기 구석기시대에 거의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출현한 듯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후기 구석기시대 서유럽의 구상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예술을 높이 평가하는 기존의 관점에는 문제가 있다. 서유럽에서 나타난 구상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예술을 우월한 ‘진보형’으로 보는 관점은 자기민족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하며, 이로써 현생인류, 그중에서도 특히 서양인의 우월성을 암시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술의 기원에 관한 기존의 견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예술’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정의한 다음 고고학의 최신 성과에 비추어 ‘미학적 인간’의 역사를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