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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징비록
글쓴이
류성룡 저
출판사
알마 출판사
출판일
2017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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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류성룡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모시며 평양으로 파천했다. 이때 나라를 그르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는데,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책 소개

분야한국사
시인 김기택과 미술작가 이부록 그리고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 임홍빈이 만나
오늘의 한국어로 《징비록》을 새롭게 펴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국방·군사·정치·외교·민사작전 등 모든 분야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대신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 기록이다. 조선에서 간행된 이후 일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새로이 간행했고, 중국 역시 임진왜란 전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찍이 영어판까지 나온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 기록이기도 하다.

시인 김기택은 《징비록》 안에 깃든 원작자의 마음을 오롯이 되살리되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편안한 문체로 다듬었다. 또한 일평생 전쟁사 연구에 몸을 바친 임홍빈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선임연구원의 해설도 본문과 긴밀히 맞물려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해설은 전쟁의 중요한 일지와 연대기 그리고 조선, 일본, 명나라의 전력과 무장의 실제를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해 풀어냈다. 마지막으로 미술작가 이부록은 한국과 일본의 임진왜란 전문 전사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는 국립진주박물관과 일본 오사카박물관의 전문자료를 섭렵하고, 임진왜란과 관련한 일본 측 군기물(반다큐멘터리, 반소설류)에 등장한 미술 형상을 참고해 이 책에서 새로운 형상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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