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 미학과 예술 사상에 대한 결정체, 『아이스테시스』
자크 랑시에르는 자신의 정치철학적 주저인 『불화』에서 ‘정치’를 민주주의의 동의어로 이해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미학적 주저라 할 수 있는 『아이스테시스』에서 ‘미학’을 역시 민주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제시한다. 즉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미학은 민주주의 체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부제 ‘미학적 예술체제의 무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무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14개의 무대는 18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역사적 시기의 주요 예술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통상적으로 ‘모던’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되고 분석되었던 시기의 예술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무대’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모더니즘’ 혹은 ‘모더니티’에 대한 기존 담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서사를 제시한다. 그 서사는 이 책의 「서곡」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술적 모더니티에 대한 하나의 ‘대항-역사’(contre-histoire)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항-역사로서의 새로운 미학 담론을 제시하는 랑시에르는 궁극적으로 존재론적 민주주의를 탐구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는 유용한 것과 해로운 것, 의미 있는 것과 무의미한 것, 큰 것과 작은 것 등을 분별함으로써 위계질서를 구축하는 이성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날 때, 모든 것은 평등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에게 미학체제는 바로 이 평등을 탐험하고 현시하는 사유 체제이다. 이 점은 무엇보다도 재현의 주제에 따라 장르를 위계적으로 구별한 전통적 관점의 해체에서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이전까지 신화나 성서 이야기, 그리고 주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역사화나 왕족과 귀족을 그린 초상화는 고귀한 주제를 다룬 고귀한 장르에 속했던 반면, 서민의 일상적 삶을 재현한 풍속화, 자연 사물을 그린 풍경화, 그리고 가장 쓸모없는 죽어 있는 사물을 그린 정물화는 저속한 장르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미학체제에서 예술은 그 재현 주제들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미학적 시선은 그것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초연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초연함은 세상이 모든 것에 시선을 주는 평등주의 시선에 다름 아니다. 이제 이 시선 속에서 모든 것은 동등하게 예술적 재현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랑시에르가 인용하고 있듯이,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 즉 가장 고귀한 물건에서부터 가장 하찮은 물건에 이르기까지, 천상의 시스티나 성모에서부터 플랑드르의 술주정뱅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예술적 영역에 속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