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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서 선역
글쓴이
반고 저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출판일
2024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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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반고

자는 맹견(孟堅)이며 32년(광무제 8년) 부풍군(扶風郡) 안릉현(安陵縣)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반표(班彪)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기 후전』을 집필하던 중 사사로이 국사를 찬술한다는 중상모략으로 투옥되었다가, 동생 반초(班超)의 상소로 풀려나 후한 명제(明帝) 휘하에서 국사를 편찬하게 되었다.
전한의 왕조사를 편찬하라는 명에 따라 가업 『사기 후전』을 국사로 개편하여 본기 12편과 열전 70편을 완성했고, 이어서 지(志) 10편과 표(表) 8편을 더하여 『사기』의 기전체를 보완함으로써 이후 동아시아 정사의 모범이 된 체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조서와 상소문, 문학 작품 등 일차 사료를 대거 보전했고, 「지리지(地理志)」로 인문 지리적 기틀을 세웠으며, 「예문지(藝文志)」를 통해 도서 분류 체계를 마련했다. 「예문지」 춘추(春秋)류에 『태사공(太史公)』 130편이 수록됨으로써 사마천 개인의 저작물이었던 『사기』가 사서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반고는 부흥한 제국의 질서 수립을 위해 새로운 유학 이념을 가다듬은 유학자이자, 『문선(文選)』 첫머리에 실려 있는 『양도부(兩都賦)』 2수와 『답빈희(答賓戱)』 등을 남긴 한부사대가(漢賦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한서』 편찬 중에 낙양 황궁인 백호관에서 열린 토론 내용을 선제(宣帝)의 명으로 기록한 내용이 『백호통의(白虎通義)』로 남아 있다. 흉노 전쟁에 참전했다가 반역에 연좌되어 옥사할 무렵 지은 『영사(詠史)』는 현존하는 오언시 중 가장 이른 작품으로 꼽힌다. 92년, 『한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반고가 남긴 유업은 누이동생 반소(班昭)에 의해서 마무리되었다.

책 소개

분야세계사
“사마천의 『사기』가 역사는 어떻게 변화해온 것인지에 대한 서술이라면,
『한서』는 지금의 체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백수이白壽彛(중국 현대 사학자)

정사正史의 원형을 그대로 담아 풀어쓴 『한서』의 정수
-12기紀·8표表·10지志·70전傳에서 가장 핵심적인 25편을 골라 풀어쓴 축소판 『한서』

지금, 왜, 다시 『한서』인가?
예로부터 ‘사한史漢’으로 병칭되었던 『사기』와 『한서』는 후세에 역사서의 표본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서로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서 독서전통에서 『사기』에 비해 『한서』가 갖는 위치는 참으로 미약하다. 현재 반고의 『한서』는 「열전」 선역본과 「예문지」나 「지리지·구혁지」 등이 출간되었지만, 『한서』의 체제를 그대로 살려 보여주는 책은 없었다. 이 책은 완역은 아니지만, 역사서 편집의 표준이 되었던 기·표·지·전의 체제를 그대로 따라 그중 가장 핵심적인 25편을 골라 풀어쓴 것이다.
사마천이 ‘자신만의 학설(一家之言)’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여 역사를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찾고자 했던 반면, 훨씬 세련되고 제고된 수준의 유학이 완성된 시기에 살았던 반고는 역사를 통해 왕조와 정치를 유지하는 이념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런 만큼 사마천이 역사와 인물에 대한 개탄, 분노, 슬픔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면, 반고는 중국적인 제도·사상·학술·문화가 만들어진 전한 시기에 대해 ‘거리 두기’ 시선을 유지하며 『한서』를 저술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지식인들에게 역사와 전고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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