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가슴속 한켠에는 환상의 자리가 있다. 그 ‘환상’이야말로 꽉 막힌 듯 느껴지는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숨은 힘인지도 모른다. 니체에 따르면, 환상은 현존재(자)를 절망과 허무(vide)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다. 환상을 “속임수이자 오류이며 동시에 신비한 작용”이라 특징지으면서도 단순한 착각과 구별하려는 것은, 이처럼 환상이 우리 욕망(desire)의 한 부분(몫)이자 이를 만족시키는 수단이기도 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환상은 미혹에 사로잡힌 생각이 아닌 허깨비 같은 이미지다. 우리를 환상(幻想)으로 이끄는 데에 환상(幻像)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현실과 교접하는 문화의 이면에 또아리를 튼 환상(幻想)이 허한 글과 휘한 그림으로 토해낸 환상(幻像)의 힘 때문일 것이다. 통상 글과 이미지가 공존할 때 사람들의 시선은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상상의 분산, 관념의 확대”라고 해석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이 가득했던 중세 성경과 불경의 예에서 보듯이, 분산되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은 천국도 지옥도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와 도상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다. “자, 이제 당신 마음속의 환상을 펼쳐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