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2년 여름부터 1년 반 동안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글에 최근에 쓴 글 몇 편을 보태 묶은 것이다. 저자는 문학을 음미하면서 계절과 날씨와 시간에 따라 그에 꼭 맞는 문학작품과 함께 문인들의 에피소드와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봄날에는 청산가리처럼 뿌려지는 봄볕에 취해 ?사랑은 영원히?를 부르던 박정만 시인과,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소설가 최명희가 생각나고, 5월에는 자신의 결혼식에 지각하여 “봄아 날 좀 살려다오” 했던 아찔했던 순간도 기억난다. 오후가 되면 ‘오후’의 느낌을 강렬하게 일깨웠던 작품을 떠올리고, 또 어떤 봄날 문인들과 흐드러지게 함께한 술자리도 잊지 못한다. 이성복의 시집을 읽으면서는 깊은 심연을 채워오는 문학적 오르가슴에 몸을 떨면서 질 나쁜 녀석이 되고 싶었던 청소년기를 회상하고, 문인들을 위해 “칼을 갈아주는” 문학담당 기자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학을 꼽는다면 ‘아버지의 문학’이다. 어렸을 적 누나가 동생들 공부시키겠다고 무단가출을 감행했을 때, 누나를 찾아내 집으로 데려와 아랫목에 앉혀 놓고 “네 이년,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거라”라고 꾸짖던 아버지. 집 나간 딸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데려왔다고 안도한 후에 속마음을 감추며 큰소리치시는 저 반어법의 무게에서 저자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문학을 보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밖에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에 대한 논쟁, 문학작품에 순위를 매기는 행위, 예술작품에서 표절의 문제, 한국의 이미지가 문화 예술의 세계진출에 미칠 영향, 창작의 모티프로서 ‘복수’가 가지는 의미, 정신이 아닌 몸의 아름다움 등 최근의 문화적 관심사와 키워드를 주제로 삼은 글들은 시사적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민감한 논쟁과, 우리가 마주하는 문화 현상에 대한 저자의 섬세하고도 도전적인 독법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