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준휘(安俊暉)가 ‘모시풀 들판(苧種子野, 무사시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시집 『무사시노(武?野)』의 편집을 마무리하던 무렵이었다. 『무사시노(武?野)』는 갑자기 『모시풀 들판(苧種子野, 무사시노)』이 되었다. 그때 시인은 한 연구서에서 ‘무사시노(武?野)’의 어원이 한국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연구서에 따르면, 서기 600년대 무렵,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이 지금의 ‘무사시노(武?野)’ 지역에 직물 기술과 함께 마의 일종인 ‘모시풀 종자’를 들여왔고, 그 모시풀 종자의 들판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된 시인은 가슴 속 깊이 거듭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 책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무사시사카이(武?境) 역’에 내렸는데, 마침 무사시노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크고 신비한 보름달이었다. 보름달은 낮고 크게 불같은 색을 띠고 무사시노의 하늘에 둥실 떠 있었다. 그때 안준휘가 그 자리에서 지은 시가 “오늘 밤 무사시노의 보름달 한 점 구름 없고, 내려서니 등뼈인 조선 다시 불 켜지며, 무사시노 모시풀 들판이 되네”이다.
그 가슴 속 수많은 감동 중 하나는, 시인이 문학에 눈뜬 계기가 ‘구니기타 돗포(?木田??)’의 『무사시노(武?野)』라는 소설이었다. 안준휘는 이바라키(茨城)현의 산촌에서 태어나 자라,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소년이었다. 그때 안준휘는 무사시노가 어느 지역의 지명인지 알지 못했고, 또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랬던 것이 훗날 문득 깨닫고 보니, 놀랍게도 시인 자신이 그 땅에 살고 있었고, 시집 『무사시노(武?野)』를 집필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와 관련된 깊은 감동은 안준휘 자신이 재일한국인 2세로서의 내력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그의 고향의 자연이 무사시노의 자연과 유사한 것도 있어, 신기하게도 향수어린 무사시노와 시인 자신의 뿌리가 부합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