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명화를 한 편의 뛰어난 소설로 재탄생시킨 『진주 귀고리 소녀』의 작가가 이번에는 15세기 태피스트리 속 여인들의 이야기로 독자를 초대한다. 파리 클뤼니 중세박물관에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 연작, '여인과 일각수'를 소재로 중세의 풍속사와 미술사를 생생하게 되살린 소설. 길드조합이 번성했던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질척거리는 오물투성이의 파리 뒷골목, 창녀가 나오는 브뤼셀의 술집, 파리 귀족의 호화로운 저택, 중세 수녀원, 루브르 성과 노트르담 성당을 조망할 수 있는 센 강이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소설에는 태피스트리 밑그림을 주문받은 파리의 바람둥이 화가 니콜라 데 지노상을 중심으로 귀족 가문의 여인들, 시녀들, 태피스트리 작업실의 여인들 등, 다양한 중세 여인들이 등장한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 장 르 비스트로부터 외면당하는데다 딸 클로드의 싱싱한 젊음을 늙어가는 육체로 질투할 수밖에 없는 귀부인 주느비에브 드 낭테르는 남편의 뜻을 거슬러 ‘여인과 일각수’ 전설을 태피스트리의 주제로 삼게 만든다. 그것은 아마도 시들어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교묘한 복수였을 것이다. 꽉 짜인 귀족 생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며 비밀스러운 사랑을 꿈꾸고 있던 주느비에브의 딸 클로드에게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맡게 된 바람둥이 화가 니콜라의 등장은 참을 수 없는 일탈의 유혹으로 처녀의 욕망을 이끈다. 브뤼셀의 태피스트리 장인 조르주의 아내 크리스틴은 여자들한테는 허용되지 않던 태피스트리 직조 작업에 참여하면서 또다른 중세 여성의 강인한 욕망을 보여준다. 크리스틴의 눈먼 딸 알리에노르는 작업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혼해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고 니콜라의 유혹에 적극적으로 몸을 연다. 니콜라는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이들 네 여인한테 각기 숨은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들은 「여인과 일각수」 태피스트리의 예술적 영감이 된다.
소설을 다 읽을 때쯤이면 태피스트리 속 여섯 여인의 표정과 손끝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며, 밋밋해 보이던 여인들의 표정은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운명과 겹쳐지면서 그들의 고뇌와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바람둥이 화가를 중심으로 중세 여인들의 숨은 욕망이 드러나고, 그것은 다시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