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 전문가로서 한미 양국의 정치에 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내외 다양한 매체에서 발언해온 정치학자 안병진의 『제4부의 상상력-바이오크라시, 비인간 생명에게도 투표권이 있다면』이 문학과지성사와 재단법인 ‘지구와사람’의 공동 기획으로 출간되었다. 제목이 나타내듯 ‘제4부,’ 혹은 저자가 이름 붙인 대로 ‘미래심의부Future Deliberative Branch’라는 제4의 국가기관을 신설하는 구상을 펼쳐 보이는 이 책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국가권력을 나눠 가지며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뤄온 지금까지의 민주주의에 미래 세대와 비인간 생명의 자리를 만들어 이들에게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젖힌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에 대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다면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처럼 정치질서와 국가정책, 사회제도 차원에서 미래 세대를 고려하는 장기적 관점이 점차 더 강하게 요구되는 실정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 제도를 기후위기의 시대에 맞게 생태적으로 재구성하는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제4부의 상상력』은 미국 민주주의 모델의 설계도를 정초한 근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미국 민주주의 모델은 한국에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준거점이 되었던 만큼, 미국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논의는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근대 민주주의의 탁월한 발명품이었던 이 모델은 다수 인민에 의해 지배되면서도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인민 의사의 반영과 현자의 숙의 사이에서 부단히 균형을 찾아간다는 특성을 지녔지만, 현대에 이르러 양당의 독점 체제나 금권 선거, 단기주의적 경향과 같은 정치 구조가 만들어지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미국 민주주의 모델의 여러 특성 중에서도 인간중심주의에 주목하는 저자 안병진은 민주주의가 상정하는 공동체 성원의 범위를 미래 세대 인간과 비인간 생명까지 확장해보자는 대담한 구상을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 제도와 전략으로 흥미롭게 구체화한다. 특히 한국과 미국 정치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해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속에서 작동하는 제4부의 구성 방식을 상세하게 그려 보임으로써 대안적이고도 유효한 정치질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재선과 12·3 내란 사태로 한미 양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두에 오른 민주주의를 더 깊고 더 멀리 성찰할 기회가 되어준다. 이 책은 제4부를 주제로 한 저자의 2023년 아테네 민주주의 포럼 발표문을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인간과 비인간을 아울러 주체로 삼는 대안적 법학과 정치질서로서 각각 지구법학과 바이오크라시를 소개하는 〈지구와사람〉 총서의 두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