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넘어,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다”
처음 이 책을 집필했을 당시의 나는 예술의 특별한 성격과 특권을 주장하는 이들 및 예술을 사회 및 문화적 역할에 종속시키려고 하는 이들 사이의 오래된 갈등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그런 맥락에서 나는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었다. 나는 예술적 활동과 다른 활동 유형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제12장 마지막에 가서 잠깐 주목하기는 했다), 나의 이런 태도는 사회적 산물로서의 예술작품이 인간의 근원적 흥미 및 관심으로서의 예술작품과 가지는 관계, 그리고 예술작품이 사회적, 전기적, 역사적 조건과 가지는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책이 처음 집필되던 당시 내가 느낀 미학 이론의 소명은 예술의 특별한 성질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 그리고 심리학이나 사회학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예술비평이라는 고유한 작업을 정립하는 것, 그리고 예술작품들에서 가장 온전하게 발견되는 특유한 종류의 가치(예술의 도덕적, 정치적, 철학적, 종교적 측면에서 독립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시도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즉 클라이브 벨(Clive Bell)이나 로저 프라이(Roger Fry)와 같은 소위 ‘형식주의자’에 의한 시도는 나에게는 전반적으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비록 그들의 비평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그들의 생각은 건설적인 논의를 촉발했지만 말이다. 물론 내가 이 책의 초판을 집필할 당시에는 수잔 랭거(Susanne Langer)나 찰스 모리스(Charles W. Morris)의 기호학적 예술 이론이 존재했고, 많은 이들에게 기호학적 예술 이론은 밝은 전망을 제시해주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기호학적 이론을 그 한계로 인해 지지하기 힘든 견해로 간주했었다(이론적 난제들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예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은 (특히 영어로 접할 수 있는 그들의 생각은) 대부분 초기 스탈린주의적 성격을 보였고, 내가 예술의 중요한 국면들이라 간주한 요소들에는 상당히 무관심했다. 한편, 당시 융성하고 있었던 신비평(New Criticism)에서 나는 문학을 그 자체로 특별하고 중요하게 인식하려는, 그리고 문학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검증 가능하고 객관적인 방법을 발전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