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주판치치는 "실천이성비판"을 비롯한 칸트의 윤리학적 텍스트들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그녀는 칸트의 윤리학에는 오늘날의 탈근대적 분위기가 회피하고 싶어하는 어떤 핵심적 통찰을 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칸트는 악의 문제나 공포의 문제에 과감하게 파고들었으며, 흔히 형식주의자라는 비판을 듣곤 하는 통속적 면모의 이면에서 당대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가지고 있었던 철학자였음을 드러낸다.
또한 주판치치는 스스로 ‘실재의 윤리’라 부르고 있는 새로운 윤리적 관점을 고대의 비극과 현대의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자세를 통해서 설득력 있게 예증하고 있다. 일반적인 이론서들과는 달리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이러한 문학적 사례를 제공함으로써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내용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은 물론 라캉의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주판치치는 난해한 라캉 이론의 핵심에 해당하는 윤리학적 차원을 해명함으로써 오늘날 라캉주의적인 새로운 윤리학 교과서를 집필한 셈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주판치치의 서술의 세련됨과 아름다움에 충분히 매혹될만 하며, 따라서 지젝이 그녀의 책을 두고 “알렌카의 책이 고전적인 참조 저술이 되지 않는다면 유일하게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우리 학계가 자기?파괴의 모호한 의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뿐일 것이다”라고 한 찬사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