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80이 넘은 지금 나의 삶을 되돌아 보며 60년전 에 서울에 사는 “淑”이 그 다음해 여름에 제대 할때까지 대구에서 공군치과군의관으로 복무하는 나 “旭” 에게 보낸 30통의 편지들을 읽어본다. 나는 1966년 가을 대학원 유학생으로 “淑”은 1967년 봄에 나의 약혼녀로 미국에 와서 그 해 여름에 뉴욕에서 결혼했다 우리의 연합된 삶을 통해서 두 자녀와 네 손주 (두 친손주 와 두 외손주)가 태어났다. 나는 상직적으로 우리부부가 한국고유의 도라지꽃 뿌리를 1967년에 미국 땅에 이식하여 여섯송이의 청초한 보라색 도라지꽃이 비옥한 미국땅에 아름답게 피었다고 생각한다. 반세기도 넘게 고이 간직했던 이 편지들을 손주들에게 문화적 정신적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 계통 미국인 며느리와 사위를 통해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3세들이라 안타깝게도 한국어를 읽지 못하기에 영어로 번역해 보려고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깊은 감성의 영역에서 한국어의 표현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은 마치 김소월의 시를 영어로 번역하려고 애쓰는듯한 어려움과 서글픔이 있다. 그래서 번역은 포기하고 원어로 남기려고 한다.